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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김윤식 「소라 껍질」

by 답설재 2018. 6. 12.

소라 껍질

 

 

김윤식

 

 

아치문을 달지 않고 높은 첨탑을 세우지 않아 이 건축은 하늘을 향한 고딕 양식이 아니다

 

주인은 넓은 마당을 가지지 않고 수레를 부리지 않고 현관에 등을 달아 저녁을 밝힌 적이 없다

 

은자처럼 촛불을 켜 들고 꼬불꼬불한 지하 계단을 밟고 내려가거나 문 앞에서 비를 맞았을 것

 

물이 들고 나고…… 삶이란 한 간 셋집의 고요 같은 것이고 옷 한 벌에 부는 바람 같은 것이니

 

굳이 아치문이나 첨탑을 두지 않은 주인의 고집스러운 건축 양식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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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1947년 인천 출생. 1987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고래를 기다리며』 『북어 2』 『사랑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마음이 저문 종소리를 울릭 있다는 것이다』 『옥탑방으로 이사하다』 『길에서 잠들다』 『청어의 저녁』.

 

 

『현대문학』 2018년 6월호.                                                         

 

 

 

 

부끄럽고도 미안한 말이지만 여러 편의 시 중에서 이 한 편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시는 읽으며 살자고 다짐했고 그렇게 하며 산 것 같은데도 마침내 이렇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제 시도 읽지 못하는구나…….'

시를 읽으며 살자! 그런 다짐이라도 하지 않았더라면, 그 다짐을 헌신짝 버리듯 했더라면 이 슬픔은 느끼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슬픔은 더 크게 다가옵니다.

 

우리 나이쯤의 시인이 삶을 생각합니다.

그 길을 더듬어 소라 껍질에 눈길이 멈추었을 것입니다.

 

내가 화분 위에 얹어둔 저 소라 껍질을 보며 이제부터 이 시를 떠올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