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이장욱 「생활세계에서 춘천 가기」

by 답설재 2018. 4. 20.

생활세계에서 춘천 가기


이장욱


생활세계에서 춘천을 갔네.
진리와 형이상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생활세계에서 춘천을 갔네.
초중등학교 때는 우주의 신비와 시를 배웠지.
공부도 열심히 했고 연애도 했는데
또 독재자를 뽑았구나.

춘천에는 호수가 있고 산이 있고 깨끗한 길이 있지.
여자와 남자와 개들과 소풍이 있고
할머니도.
인사를 하고 밥도 먹었네.
나는 춘천에 들렀다가 그리스와 신라시대를 거쳐
서울로 돌아왔다.

저는 종교적인 인간이라 매일 기도를 합니다만
고백성사를 한 뒤에 영성체를 모셔야 합니다만
아아, 유물론이 옳았다.
춘천에서 나는 죽어가는 시절의 고독을 떠올리고
사후의 무심을 생각하고
길거리의 개들과 눈을 맞추었네.

생활세계에서 춘천을 가는 일
그것은 할인마트에 내리는 석양처럼 신비로운 일
낮잠에서 깨어난 오후처럼
비변증법적인 일
열차가 북한강의 긴 교량을 건널 때 옆자리의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어대자
바로 그 순간 온몸에 스며드는
정확한 일


――――――――――――――――――――――――――――――
이장욱  1968년 서울 출생. 1994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내 잠 속의 모래산』 『정오의 희망곡』 『생년월일』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대산문학상〉 수상.

 

 

 

 『現代文學』 2017년 8월호.

 

 

 

그동안 춘천 갔던 일을 떠올리니까 아, 이런! 그 일들이 모두 슬픔이었던가 싶었습니다.

그것이 우울하게 합니다.

 

슬픔이나 우울함이 굳이 싫다는 건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