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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박상순 「너 혼자」

by 답설재 2018. 7. 31.

너 혼자

 

 

박 상 순

 

 

1. 너 혼자 올 수 있겠니

2. 너 혼자 올라올 수 있겠니

3. 너 혼자 여기까지 올 수 있겠니

 

안개가 자욱한데. 내 모습을 볼 수 있겠니. 하지만 다행이구나 오랜 가뭄 끝에 강물이 말라 건너기는 쉽겠구나. 발밑을 조심하렴. 밤새 쌓인 적막이 네 옷자락을 잡을지도 모르니 조심해서 건너렴.

 

나는 삼십 센티미터의 눈금을 들고, 또 나는 사십 센티미터의 눈금을 들고, 또 나는 줄자를 들고 홀로 오는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1. 너 혼자 말해볼 수 있겠니

2. 너 혼자 만져볼 수 있겠니

3. 너 혼자 돌아갈 수 있겠니

 

바스락 바스락, 안개 속에 네 옷깃이 스치는 소리가 들리는구나. 네가 네 청춘을 밟고 오는 소리가 들리는구나. 하지만 기운을 내렴.

 

한때 네가 두들기던 실로폰 소리를 기억하렴. 나는, 나는, 나는, 삼십과 사십 센티미터의 눈금을 들고, 줄자를 들고, 홀로 오는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딩동동 딩동동, 네 주머니 속에서 울리는 내 소리를 기억하렴. 하지만,

 

1. 너 혼자 내려갈 수 있겠니

2. 너 혼자 눈물 닦을 수 있겠니

3. 너 혼자 이 자욱한 안개나무의 둘레를 재어볼 수 있겠니

 

 

 

                                        

 

 

누가 누구에게 이렇게 간절하게 묻고 부탁하는 것일까?

우리가 이보다 더 간절할 수 있을까?

 

2006년엔가, 어느 신문에 일부가 소개된 이 시를 보고 학부모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 시의 일부를 인용하고 이렇게 쓴 적이 있었습니다.

 

(전략)

'너 혼자 갈 수 있겠니?'

'너 혼자서라도 길고 긴 여행을 할 수 있겠니?'

'눈물 닦으면서도 갈 수 있겠니?'

'어떠한 어려움도 이기며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겠니?'

저는 이 아이들을 그런 눈으로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2011년에는 놀라운 그림동화 《혼자 가야 해》(조원희 글·그림, 느림보)가 소개된 걸 보며 또 이 시를 떠올렸고, 일전에 그 책을 우리 동네 도서관 유아실에서 빌려 읽었습니다.

 

누가 어떤 시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 물으면 어떤 조건인지 되물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조건에 따라 생각나는 시를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냥 좋은 시를 이야기해 달라고 하면 이 시를 소개할 것 같습니다.

 

1. 너 혼자 올 수 있겠니

2. 너 혼자 올라올 수 있겠니

3. 너 혼자 여기까지 올 수 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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