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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할머니가 된 정현이

by 답설재 2026. 7. 21.

 




정현이 찾아왔다.
우리는 1972년 봄에 만났다. 54년 전이다. 지금 67세? 그럴 것이다.
그 54년간 한두 번 만난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물어보지는 않았다. 중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54년 전 그날들의 정현이와 얼굴에 주름이 잡히기 시작한 지금의 정현이가 그리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얘야." 하거나 "정현아." 하고 부르고 싶고 그렇게 부를 수 있으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아이들을 만나면 이렇게 익숙한 경우가 있고, 저 애가 그때와 저렇게 다르구나 싶을 때도 있다. 나는 그걸 구분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 아니고 그냥 그런 느낌을 가진다는 것인데, 당연히 전자(前者)의 경우가 좋다. 그런 느낌을 주는 사람이 영원한 내 제자일 것 같기 때문이다.
정현이 어떤 일을 하는지 물어보진 않았지만 지금도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게로 걸어올 때, 카운터로 갈 때, 뭘 가지러 갔다 올 때, 정현이는 어슬렁거리는 몸짓이 아니었다. 그런 몸가짐도 정현이 아직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설명한다.
둘 다 세상을 떠났다는데, 나는 정현이네 아빠와 엄마를 기억하고 있다. 나는 정현에게 말해도 좋을 것과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을 구분해서 이야기한다. 정현이 아빠는 그 캄캄한 시골의 가령 한여름에도 흰색 긴 팔 옷을 입는 키가 큰 남자였는데 나는 그런 것도 굳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정현이 엄마는 가족과 함께 도시에서 그 시골로 들어왔지만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고달픈 생활을 했을 것이다.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했을 때 그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정현이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정현이 내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 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절대로 그런 말을 할 사람은 아니다. 걔는 내가 죽기 전까지 만난다 해도 나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을 사람이다. 

내가 식사와 차를 주문하고 싶어 했지만 정현이 굳이 자신이 계산해야 한다고 우겼다. 나더러 다음에 사달라고 하면서 그래야 또 찾아오기가 좋다고 했다. 잠시 그렇겠는지 어떤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은 손가방에 꽂혀 있는 두어 장의 신용카드가 보였는데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얼굴에 생활의 때가 묻은 제자가 있고, 이제 늙어가면서도 그 때를 덜 묻힌 제자도 있다. 그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이러나저러나 내겐 그 옛날의 내 아이여서 일정 부분 내 책임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얼굴에 생활의 때를 덜 묻힌 아이가 보기는 좋지만 그걸 어떻게 마음대로 하는 건 아니다.
나는 정현에게 이런 말을 했다. 누가 들으면 극단적인 관점으로 생각할 것이라는 조건을 붙였다. "태어나서 아이를 낳은 여성은 세상의 어머니야. 나는 세상의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한 일은 모두 용서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빵을 훔쳤더라도 말이야. 그 빵을 자신의 입엔 넣지 않았다면 그렇다는 말이야."
 
정현은 헤어질 때, 다음에는 누구도 데려오고 누구에게도 이야기하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런 건 전혀 바라지 않는다. 어쩌면 그건 내게는 성가신 일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이제 그들에게 더 가르쳐야 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제 와서 그들을 만나 뭘 하겠는가. 그렇지만 정현의 말에 대해 내 생각을 이야기하진 않았다. 중요한 건 정현이 생각이고, 정현이 내게 찾아왔다는 사실이다. 내가 바라는 건 걔가 나를 그리워하고 나도 걔를 그리워하며 지내는 것, 그것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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