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존재하거나 존재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세상을 ‘이곳(이쪽)’ ‘그곳(그쪽)’ ‘저곳(저쪽)’으로 나눌 수 있다.
뭐냐 하면, 나(답설재)를 기준으로 할 때, 내가 지금 앉아 있는 세상은 ‘이곳’이고,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그곳’, 그게 언제일까, 내가 곧 가게 되는 저승은 ‘저곳’이다.
이러지 말고 우선 이곳과 그곳이 어떤 곳인지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러면 세 곳이 어떻게 다른지 저절로 드러날 것이다.
이곳과 그곳은 생활에 필요한 도구들은 거의 같다. 이곳 사람 중에는 그곳에서 쓰는 도구들을 그대로 쓰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도 있다.
가령 나는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 핸드폰은 거의 불통이다. '핸드폰'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왜냐하면 손에 들고 있지 않고 저쪽 테이블 어디에 종일 얹어 두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더러 그곳 사람이 전화를 하거나 메시지, “카톡카톡”하면서 ‘카톡’을 보내기도 하지만 그리 긴요한 얘기를 하지는 않는다. 어딘지 형식적이고 객쩍고 '뻘쭘'해서 한두 번 그런 분위기를 느낀 사람은 이후로는 연락을 잘 하지 않게 된다. 그걸 파악한 이곳 사람들끼리는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흔히 '실없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주고받는다? 그렇지도 않다. 아무리 '카톡거려도' 안 봐도 된다. 그만이다. 보내는 쪽도 그렇게 생각한다.
말이 났으니까 말인데, 그곳 사람이 나를 만나면 반가운 척하는 걸 여러 번 봤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과 나는 아무래도 그곳 사람들끼리 만날 때처럼 만만하고 곧 또 만나자며 스스럼없이 헤어지고 그렇진 않다.
그곳에서 이곳으로 오려면 어떤 문을 열고 들어오거나 누구에게 허락을 받거나 하진 않는다. 울타리 같은 것도 없다. 자신도 모르는 새 이쪽에 들어와서는 어처구니없다고 억울해하기도 한다. 그렇게 어처구니없어해 놓고는 남들이 어처구니없다 하면 그걸 또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한다.
유념할 것은 이곳에서는 그곳이 비교적 잘 보이지만, 그곳에서는 아무리 설명해도 이곳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곳 사람들 중에는 이곳을 잘 아는 것처럼 구는 사람이 없지 않지만 나는 그걸 인정하지 않는다(‘제까짓 게 뭘 안다고….’). 그곳을 그곳 사람들이 다 이해하지 못하듯 이곳 사람들도 이곳을 다 알기는 어려운 일이다. 다만 이곳 사람들은 대체로 그곳 사람들보다는 자신이 처한 세상을 제대로 알아보려는 마음을 갖고 있기는 한데, 그건 그곳 사람들처럼 종일 무슨 일을 부지런히 해야 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무슨 철학자가 된 듯한 사람이 자주 눈에 띈다(철학이 뭐 별것이겠느냐고 할지도 모른다). 이와 함께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그곳 사람들 중에서 이곳을 자세히, 구체적으로, 전체적으로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이건 확실하다!
유념할 것이 더 있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싶으면 이쪽 세상으로 '풍덩!' 빠져보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렇게 빠지고 나면 다시는 그쪽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그걸 안다고 해서 이쪽으로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곳 사람들도 '조만간'(함께 혹은 비교적 남보다 늦거나 빠르게) 이곳으로 올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 저곳(저승이므로 저곳, 그런 면에서 이곳은 그곳과 함께 아직은 이승)으로 가는 것도 그렇다. 그곳에서 이곳으로 오는 것과 성격은 같다. 되돌아오거나 할 수는 없다. 여기 이곳에 있다가 저곳으로 가면 다시는 이곳으로 오지 못한다. 그만이다. 끝이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사람들과 어우러져 사는 것으로 인식하며 살아간다. 대체로 그렇기도 하다. 이곳은 어떤가 하면 더러 그곳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기도 하고 이곳 사람들끼리 어우러져 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혼자'이기가 쉽다. 몸은 누구와 함께 앉아 있다 하더라도 마음으로는 흔히 그렇다. 혼자다. 그게 자연스럽고, 자연스러우므로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 아닌가 싶다.
무슨 이야기를 더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긴 하지만 아무리 이야기해 봐야 별 수 없는 게 이곳, 그곳, 저곳의 성격이다. 뭘 더 이야기해 봤자 끝도 없다.
덧붙이면 이런 것도 있다. 이곳을 그곳에서 저곳으로 가는 징검다리쯤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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