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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내 선배 세 분의 노년

by 답설재 2026. 7. 13.

 

 

 

나에겐 내 진로를 걱정해 준 선배 세 분이 있다.
더 있지만, 존재 자체가 시시하고 희미한 사람에게 뭐가 그리 많으냐고 할 것 같아서 미리 셋으로 압축해 놓았다. 압축? 선발? 선출? 선정? 에이, 어쨌든 셋이다.
연령은 나보다 세 살 혹은 열 살 정도 더 많다

나는 그분들을 그리워하며 지낸다.
저절로 내게 영향력을 미치던 시절의 모습들이 떠오른다. 스타일은 달라도 세 분 다 열정적으로 살아온 분들이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지금까지 나는 그 시절 그분들의 그 모습들을 떠올리여 살아왔다. 내가 지금까지 한 행동에 나답지 않은 점이 있었다면 외람된 말씀이지만 그 세 분의 모습이 베어 들어 제2의 내 모습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1974년, 가장 먼저 만난 분은 열정 겸손 지혜로 뭉쳐진 돌 같은 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까 돌이긴 하지만 영원히 부서지지 않을 차돌이 아니라 조만간 산산이 부서질 인조석이다. 우리는 어차피 거의 다 그렇게 되는 것이긴 하지만 지금 혼자 지낸다.

수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그분을 따라 글씨를 계속하지 못한 건 안타까운 일이다. 아내에게 잘하라는 부탁 말씀이 마지막 가르침인 것 같다.

전화를 하면 아무래도 치매 초기 아닌가 싶어 두렵다. 끔찍하다. 도리가 없는 일이다. 홍아, 영아! 잘 부탁한다. 어떻게 하겠나. 너희만 믿는다.

1978, 9년경에 만난 분도 열정 겸손 지혜로 요약되는 분인데 열정보다는 지혜가 돋보인다.

내가 교육부에 들어가 한국의 교육을 위해 일할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이 '선택과 집중'을 이야기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나는 누구든 부탁만 하면 거절할 수가 없어서 미친 사람처럼 일했었다. 그분과 둘이서 호젓한 등산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분은 내게 이야기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는 줄 아는 것 같았다. 요즘은 서예를 즐기며 지낸다.

최근, 하얀 옷에 중절모를 쓴 멋스러운 사진을 보았다. 아흔이 넘어 50년 전보다 깔끔하고 멋진 모습이어서 놀라웠고 기이하다는 느낌이었다. 신선이 되려나?

마지막 한 분은 나를 교육부로 데려간 분이다.

나보다 세 살 더 많지만 나는 그분에게 도저히 형님이니, 선배님이니 하지 못한다. 그분이 내가 그렇게 부르면 정말 좋겠다 해도 나는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권한으로 보면 거의 아무것도 아닌 교육부 교육연구관일 때 누구나 아는 우리나라 교육계 석학 세 분이 장관과 함께 나를 접견하게 했다. 한국에 이런 교사가 있다니! 다 허상(虛像)에 불과하지만 그게 그분이 나를 본 관점이었다.

초등학교 교사를 5년 간인가 했는데 중등학교 사회과 세 가지(지리, 역사, 공민) 자격시험에 모두 합격했다.

누구는 몇 년도에 교육부에 들어와 어떤 직위를 거쳐 몇 년도에 어디로 전출되었고 어쩌고, 모두 암기하고 있었다. 어떤 사진을 물으면 그건 몇 학년 몇 학기 몇 페이지에 실려 있다고 대답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찾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하고 싶은 일은 다하지 못했다.

앞의 두 분에게도 마찬가지지만, 나는 그분에게 너무 소홀하다. 송구스러워서 연락하면 그분은 나에게 다녀가지 못해 도리어 미안하다고 한다. 최근 그분이 두 번 다녀가는 동안 나는 한 번도 찾아가지 못했다.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나는 의아해져서 생각했다. '왜 그러실까? 미안하다니? 지금 누가 누구에게 할 말인가? 세월이 가면서 마음이 약해진 걸까? 외로워하는 것 같지?'

 

나는 이분들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이분들에 관한 한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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