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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내년엔 또 어떤 밭이 되려는지

by 답설재 2026. 7. 7.

 

 




여기는 대추밭이다.


의왕인가 어디 피부과 의사 선생님이 2022년 가을에 일꾼을 사서 대추나무 묘목 수십 그루를 심어 놓고 이듬해 봄 하필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일요일, 부인과 함께 와서 어수선한 밭을 대충 정리하고 서둘러 돌아가더니 얼마 후 또 일꾼을 구해서 온밭에 검정비닐을 깔았고 동네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조립식 창고도 하나 세워 놓고 하더니 이후로는 잠깐 다녀가긴 했는지 몰라도 근 4년 단 한 번도 못 만났다.


잡초가 제세상인 줄 알 수밖에 없다. 시간이 가버리면 비닐 같은 것 가지고 잡초를 당할 수는 없다!
2023년 여름, 저 밭을 개망초가 점령해 버려서 나는 그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남몰래 좀 황홀했고 그만큼 미안했다. 미안한 건 보는 사람이 나 말고도 좀 있으면 좋으련만 그 의사 선생님과 동서간이라는 뒷집 '지인'마저 한 번도 개망초 구경한 얘기 같은 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네 모임 때 내가 얘기를 꺼내 봤는데 그는 마치 딴생각을 하는 사람처럼 못 들은 척했다.


2024년 봄, 나는 저 밭에 들어가 대추나무를 살펴봤는데 놀랍게도 다 살아 있었다! 어떤 나무는 가냘프긴 해도 이미 예쁜 초록 잎을 내고 있었고 조용한 나무도 손톱으로 살짝 긁어 봤더니 걱정 말라는 듯 그 줄기 속에 초록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해 여름 저 밭은 2023년 만은 못해도 개망초가 대세였고 칡덩굴은 들어가 걷어내도 좋을 정도여서 내가 좀 끊고 걷어내고 하다가 힘에 부쳐 중단하고 말았는데, 누가 보면 제코도 석자인 주제에, 할 것 같아 그 생각이 떠오른 순간 도망치듯 저 밭에서 나오고 말았다.


2025년, 나는 그럴 줄 알았다. 누가 봐도 칡이 대세였고 개망초는 구색만 갖춘 정도였다. 동네 제초작업을 의논하는 날, 내가 그 얘길 꺼냈더니 두어 사람이 미소까지 지으며 그까짓 걸 다 걱정하느냐며 그렇게 헉헉거리며 걷어내고 하지 말고 뿌리를 끊어버리고 남은 뿌리에 제초제를 살짝 발라주면 깨끗이 정리된다고 했다. 마치 선크림이나 바르듯이?

 

말은 그렇게 쉬웠다. 이튿날 아침, 한길에  모인 사람들은 처음으로 내 집 올라오는 길로 들어서서 저 밭을 보더니 갖고 나온 제초제는 아예 뚜껑도 열지 않았고 길가 잡초만 정리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그들이 내 말을 무시했던 것에는 통쾌함 같은 걸 느꼈지만 '저걸 어떻게 하나?' 남의 밭 걱정이 더 깊어졌다.
정말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년 봄에 의사 선생님이 와서 물으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명함까지 주고 갔는데...

 

저것 좀 봐!
올해는 칡과 개망초 중 어느 쪽인가를 물을 필요도 없게 되었다.
나중에 관상수로 쓰려고 밭 가운데 심어 놓은 나무들까지 뒤덮어 내년 봄엔 그 나무들이 살아 있는지도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다. 대추나무가 살아 있으면 그건 거의 기적이겠지?

칡은 저렇게 뒤덮고 난 다음엔 어떻게 할 작정일까? 도대체 어떤 목표를 세워 놓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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