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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정현아, 미안해

by 답설재 2026. 7. 6.

 

 

 

오후에 정현이 연락을 했다.

번호를 보는 순간 이건 받아야 한다는 느낌이었다.

반갑고 죄송하고 기쁘고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내 음성이 참 좋다고도 했다.

 

얘는 1972년에 만났다. 아, 이런... 54년 전이다.

그 시골로 전학을 왔고, 거의 말이 없고 조용하기만 한 1년을 보냈는데, 그곳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도시로 나왔으므로 그 4년이 새록새록 생각나는 좋은 시기였다고 했다.

2008년 연말에 잠깐 연락이 있었지만, 만나고 어쩌고 하지는 못했다. 그때 얘는 난(蘭)까지 사두었다고 했는데 그렇겠지, 처음에는 내일, 아니 모레, 하다가 다음 주, 다음 달, 다음 해가 되고 그렇게 하다가 2026년이 되었고, 일이란 그렇게 되기 쉬운 법이다.

 

이번엔 어떻게 될지 그건 또 두고 봐야 하겠지. 나는 아주 단순히 지금도 키가 큰지 어른스러운지 보고 싶기만 한데 그 애는 이제 쪼르륵 달려오면 되는 애가 아니고 일흔 고개를 오르고 있는 할머니이고 나는 잘 모르지만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 있을 것이므로 간단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괜찮다.

또 못 만나면 내가 백 살 안팎쯤일 때 다시 연락이 될지 누가 아나.

 

그보다 나는 아이들에 대한 정성이 부족한 교사였다는 걸 오늘 새로 깨달았다. 오늘 가장 크게 깨달았다.

퇴임 후의 십여 년은 간접적인 교육활동이었다 해도, 공식적인 교직생활이 41년이나 되었는데 담임으로 아이들을 맡아 1년을 보낸 해는 겨우 14년이라는 걸 계산해 보고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정성 문제다.

내가 전국 초중고, 심지어 유치원, 특수학교 아이들에 대한 주제넘은 걱정 같은 건 집어치우고, 내가 맡은 아이들에게나 정성을 다하고, 내 품을 떠난 후로는 그것들이야 나를 생각하든 말든, 아니 애들이야 그렇다, 부모가 자식 생각하듯 자식도 오로지 부모만 생각하며 살면 할 일을 다할 수가 없지 않겠나, 그게 그렇듯 내가 그것들이 잘 살아가기를 일구월심 그것들만 생각하며 살아왔다면 그들은 지금 뭐가 달라도 다른 노후를 보내고 있을 것 아닌가.

 

그러니 그 애들이 나에게 연락을 하고, 나를 찾아오는 건 기적 같은 일이다. 그게 아닌가? 아니라면 그럼 그 애들이 내가 정성을 다하며 살아온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일 것이다.

정현이도 그렇다.

전화만으로도 얼마나 좋은가. 이 늙은이에게 어찌 그리 살가운지...

'미안하구나. 참 미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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