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친구는
시인 때문에 시인이 못 됐고
수의사 때문에 수의사가 못 됐다
된 것들은 될 것들이 되는 것이 두려워서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가능한 노력 한다
(「때문에」 전반부)
맨 처음의 시를 읽으며 방송으로 보던 그 일들이 떠올랐다.
사이렌이 울린다 하수관이 터졌으므로 단수하겠다는 안내방송, 브라운관에서는 달 착륙 장면이 반복해서 나오고 있다 우주인처럼 백 텀블링을 하다가 주인 하르방과 눈 마주친다
(「굽은 못의 시간」 첫 부분)
그래, 여전히 우리는 더울 땐 덥고 추울 땐 춥다. 지구가 망쳐지면 다른 별로 가겠다지만 지금으로 봐선 다 함께 지구를 탈출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사랑 같은 거 못한다고 나무라지 마세요
혼자 죽은 파파 때문이라고 거짓부렁 하잖아요
나는 살아있는 걸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한강을 건너요」 첫 부분)
세 번째 실린 시를 읽으며 특유의 운율을 느꼈고, 이후 대부분 그랬다.
슬픔을 머금고 있다는 것도 확실했다.
마마는 세 시 반과 다섯 시 사이에
물이라도 끓여 놓고 절하라고 했다
잘 되게 해 달라고 하지 말고
이런 곳이라도 오게 되어 감사하다 하라 했다
나의 주방까지 바다 건너오시려면
신령님도 고단할까 싶었는데
어느 쪽에 계시는지 들은 바가 없어
수증기 솟구치다 사라지는 모서리에 대고 절했다
이삿짐 다 부려 놓아 비에 젖을 일 없고
잔금하고 전입신고 마쳤으니 방랑할 일 없고
인터넷 연결되었으니 혼자라 할 수도 없다
이제 남은 건 기꺼이 감사하는 일
물이 가장 낮아지는 세 시 반과 다섯 시 사이
감사하기 좋은 시간
생애 시계에서 나는 반환점을 돌았을까
돌아가는 길에도 혼자 우는 새를 만날까
급히 부려 분별없는 짐들을 비집고 앉아
끓여 놓은 물에 녹차를 타 마셨다
방바닥에 그어진 금을 만지며
다짐이나 각오에 대해 생각했다
여덟 시, 사루비아 핀 해안도로 등굣길 달리기와
4교시 체육 시간,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던 발리슛의 감각과
정오의 다이빙, 낮잠 후의 목마름과
네 시의 물 빠진 바다, 식어버린 열망에 대해 생각했다
미처 버리지 못하고 끌고 온 책과 옷가지가
미안하다는 듯 몸을 꼬아가며 모서리에 쌓여 있었다
바라기는 바랐으나 바친 것 하나 없이
물 한 그릇 떠 놓고 눙치고 말았기에
고스란히 쌓여 있을 오래된 빚에 대해
독촉 한 번 오지 않은 자비에 대해
어딜 봐야 할지 몰라 생의 모서리에 대고
여기까지라도 오게 되어 감사하다 했다
(「이른 오후의 감사」 全文)
운율이 확연하다. 그럼 더 슬프게 느껴지나?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부영우 시인은 포기하진 않은 것 같았다.
불 꺼진 놀이공원을 보고 있어 그때 우린 애들처럼 소리치고 맘껏 추락하면서 제법 뜨거웠어 열기를 식히려 대관람차를 타고 땅거미 지는 도시를 내려다봤어 몸 누울 곳 하나 없는 저 땅에 성을 지을 거라고 너는 말했지 여전히 나는 느리게 돌아가는 관람차에 앉아 세계를 보고 있어 그때처럼 지친 사람들을 싣고 전철이 강을 건너고, 도로를 메운 차들이 앞등을 켜고 경적을 울리고 있어 이토록 무심한 세계를 바란 게 아니라며 등을 돌린 친구야, 그래도 세계가 그리우면 나의 화차에 올라 느리게 돌아가며 세계의 밤을 보자 해를 뜨고 지게 하는 것으로 지쳐 가는 세계를 감싸 안으며 돌아가자 그때가 아니라 달로, 세계의 밤을 지키는 달 맞으러
(「돌아가자」 全文)
그건, (슬프긴 하지만 포기하지 않은 것은) 맨 마지막 시에서도 봤다.
우리의 바람대로 우리의 여행이 바다에서 끝난다면
나는 큰 물고기를 움직여 섬을 향해 갈 테니
당신은 파도를 밀어 큰 바다를 향해 오십시오
그리하여 건너야 할 앞날이 없는 곳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의 순간을 재생하며
여생을 견디는 겁니다
(「우리의 여행이 바다에서 끝난다면」 마지막 부분)
동시작가 문봄 님이 늦겨울에 이 시집을 보내주었다.
부영우 시인의 어떤 누나가 양재에 산다고, 어느 시에 나왔는데 어렴풋하다. '시인의 말'에서는 양재가 마음을 달래고 키우기에 괜찮은 곳이었다고 했다.
나에게는 한때 양재에서 만나고 양재에서 헤어진 사람들이 있다. 세월이 흘러서 있었기도 하다.
'詩 읽은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김광규 / 교대역에서 (2) | 2026.07.08 |
|---|---|
| 김원길 / 설중여인도(雪中女人圖) (3) | 2026.07.04 |
| 피재현 / 쓰레기봉투 (8) | 2026.06.27 |
| 윤희상 / 짖는 개 (4) | 2026.06.18 |
| 베르톨트 브레히트 / 세상의 친절 (8) | 2026.06.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