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고양이가 아마도 새끼를 가졌는가 보다 했었다.
그 낌새를 챈 건 3주쯤 전이었나?
새끼 낳고는 배가 고프면 달려오고, 배가 고프지 않아도 와서 잠깐씩 쉬고 가더니, 지난 주말에는 새끼들을 데리고 울타리를 넘어와 그늘에서 쉬는 걸 봤는데 이번 주말 드디어 저 아가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넷이다.
희한하다.
둘은 검둥이고, 둘은 바둑이다. 외양이 어미 닮은 건 하나도 없다.
나는 그게 신기해서 보고 또 보고 했다.
어떻게 저 닮은 것 아닌데도 귀여워하나? 귀여워할 수 있나?
'여기는 내가 자주 오는 집이야. 저 노인 아뭇소리 안 해. 봐, 이렇게 널브러져 있어도 괜찮잖아.'

이건 새끼들이 밥 먹고 놀고 할 때 어미는 망을 보는 장면이다.
나는 대충 보고 있으니까 잘은 모르지만 기이한 건 많다.
저 고양이 남편은 절대 나타나지 않는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나에겐 아무런 책임이 없어!
그럼 왜 그렇게 졸랐지? 왜 그렇게 붙어 다녔지? 전에 남쪽 데크에서 조르는 걸 봤다. 언젠가 회화나무에 오르락내리락하며 기량을 자랑할 때 저 암컷이 "쟤는 정말 못 말려." 하는 것도 다 봤다. 괜히 훼방 놓기 싫어서 못 본 척하고 말았었다. 나는 안 보는 것 같아도 척 보면 다 꿴다.
수컷의 본능일까? 연애할 때와 자식 낳았을 때의 변심. 원망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 본능...
저 까만 새끼는 어미를 못살게 한다. 어미 얼굴에 제 몸을 갖다 비비고 하필 어미 얼굴을 스치며 왔다 갔다 하고 품속으로 파고들고 하다가 옆에 엎드린다. 어미는 단 한 번도 "아이고, 귀찮아!" 하지 않았다. 바둑이는 그렇게 귀찮게 하진 않는다.
어미는 네 마리 중 한두 마리가 보이지 않아도 굳이 찾아 나서진 않는다. 눈에 보이는 녀석만 챙긴다. 그러다가 어느 날 독립시키겠지. 분리되겠지.
먹이가 있으면 먼저 새끼들을 부른다. 내가 대신 불러봤더니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새끼들 중에는 유독 나를 두려워하는 녀석이 있다. 줄행랑을 치곤 했는데 숨는 곳은 뻔하다. 일부러 그 앞을 지나가 봤더니 숨도 쉬지 않고 몸을 감추었다.
다 못 본 척 본 것이다.
나는 결코 저 가족과 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
내 할 일도 다 못하고, 내 생각도 다 하지 못하고 있다.
핵심을 말하면, 저 고양이들이 내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면 좋겠다. 내가 보이지 않아도 조금 혹은 잠깐이라도 그리워하거나 그리워하지는 않더라도 아예 생각도 말길 바란다는 뜻이다.
나는 약속 같은 건 무조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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