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것이 제피란서스 카리나타라는 꽃이다.
이 꽃이 내 집에서 피었다.
좀 부실해서 안타깝다고 할지 모르지만 내가 이 꽃을 피워낸 것이다.
어쩌면 아니다.
내가 피워낸 건 아니다.
내가 손을 대면 꽃이 피질 않는다.
그러니까 그냥 두었고, 저절로 핀 것이다.
오늘 와서 보니까 이런 일이 일어나 있었다.
저쪽 귀퉁이에서 또 한 송이가 필 작정을 하고 있다.
나는 자연을 만끽한다느니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내가 왜, 혹은 무슨 자격으로 자연을 만끽하나.
나는 바다도 '저게 바다구나' 하다가 마침내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 그 바다 가까이에서 살아보자 싶어 찾아갔을 때(그러니까 사실상 바다를 '처음' 봤을 때) 내 가슴이 쪼개지는 줄 알았다. 나는 얼른 가슴에 두 손을 대고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가슴을 힘껏 내리눌렀다.
나는 자연을 너무 가까이할 수가 없다.
자연은 나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내가 없어도 풀은 솟아오르고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만약 오늘 내가 여기 오지 않았으면 저 꽃이 피지 않았겠나.
천만의 말씀이다.
자기네들 사정에 따라 피고 진다.
자작나무나 뭐나 위로 가지가 벋어나가 잎이 피고 꽃이 피는 것이지만, 뿌리 근처에는 내가 아무리 잘라 주어도 새순이 자꾸 솟아오른다. 처음부터 내 생각과 다르다. 자작나무만 그런 건 아니다. 다 그렇다.
그러니까 저 꽃은 자기네 습성에 따라 살아가는 것인데 내가 예쁘니 고우니 하면서 바라보는 것이다.
내가 본래 그렇다. 어쩔 수가 없다.
다 같은 '제피란서스'인데 '프리올리나'라는 활달한 여성의 이름을 가진 꽃도 필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런 꽃들이 어떻게 해서 여기 있게 되었나.
그건 말하고 싶지 않다. 말하자면 잠정적으로 비밀이다.
누군가 내게 보내주었다.
"이걸 왜 보냈습니까?"
묻지 않았다.
보내고 싶어서 보낸 것을 묻는 건 우스운 일이고 쓸데없는 짓이다.
그런 건 묻는 게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는 내게도 비밀이다.
자연에 대해서는 그 품에 안겨 있는 건 좋아하면서 그 자연을 도와주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0.1-0.2 밖에 없는 내가 앞으로 저 꽃들을 어떻게 관리해주어야 하는지, 그건 나도 모른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나.
어제저녁에 내 여동생은 전화로 "아이고, 우리 오빠... 호미자루 한번 잡아본 적이 없는데..." 하고 웃었었다.
그렇지만 다 수가 있다. 물으면 된다. 나는 챗봇에게 무례하지 않아서 뭐든 잘 가르쳐 준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하면 좀 와서 보고 말하라고 하면 된다.
말하자면 나는 지금 걱정이 없다.
'내가 만난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초아흐레 낮달 (6) | 2026.06.23 |
|---|---|
| 쓸쓸해도 괜찮은 하루하루 (6) | 2026.06.20 |
| 변화에 대한 지각 (6) | 2026.06.17 |
| '홀아비꽃'에 대한 오해 (2) | 2026.06.16 |
| 카톡카톡! 카톡카톡! (6) | 2026.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