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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카톡카톡! 카톡카톡!

by 답설재 2026. 6. 15.

나는 요즘 정신이 더 없다. 카톡 때문이다.

카톡이 나온 때가 2010년인가, 그즈음엔 새로 나오는 게 많았다. 내가 퇴임한 때였다. 어느 교사는 내가 트위터(X)를 하면 팔로우가 되고 싶다고도 했는데 블로그만 해도 분주한 느낌이어서 굳이 이것저것 할 마음이 없었다. 블로그는 블로그고 트위터는 트위터인데, 세상의 흐름을 지각하지 못한 것이다.

블로그도 나는 사실 지지부진이다. 다들 전문성을 살려 인기를 구가하는데 나 혼자 긴 글 중심으로 이 모양이다.

 

카톡은 이렇다.

"카톡, 카톡" 하는 게 듣기 싫다는 건 핑계였고 전화도 있고, 문자 메시지도 있고, 블로그도 있고, 아쉬운 것 하나도 없는데 뭘 또 하나 싶어서 15년을 버텼다.

그동안 애로가 없었나? 애로라면 없었다. 다만 내 눈치를 설설 봐가며 카톡 좀 하면 좋겠는데 쓸데없이 고집을 피워 성가시게 한다며 야속해하고, 그러는 사람들은 있었다.

 

그의 교사시절, 전교조 회원 활동에만 안주하지 말고 현장을 개혁하는 일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여달라는 내 부탁을 잊지 않고 내내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된 K 교육장은, 무슨 자료를 좀 보내달라고 하자 카톡을 하면 보내주고 싶은 자료들을 생각날 때마다 순식간에 보낼 수 있는데 온 국민의 99.95%가 다 하는 걸 안 한다고 열을 올렸었다.

 

그럼 내가 카톡을 안 하는 0.05% 중의 한 명이라고? 설마. 말하자면 그렇다는 말이겠지. 그렇거나 아니거나.

그러면서 굳건하게 지냈다.

어느 단체에서 어떤 일이 결정되면 "에이 참!" 하면서도 내게 그 결과를 문자 메시지로 보내기도 했고, 어느 단체에서는 회장이 일부러 전화해서 알려주기도 하면서 세월이 갔다.

어떤 선배는 "다른 일은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네. 혹 카톡 회사에 유감이 있는가?" 묻기까지 했다. 내가 사업가도 아닌데 유감은 무슨...

일이 이렇게 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카톡 비회원인지도 모를 일인데도 나 혼자 생각에는 내가 마치 무슨 독불장군, 카톡 없이도 잘만 살아가는 걸 증명하려는 사람 같은 착각을 갖기도 했다.

 

그러던 내가 15년 만에 카톡 회원이 되어버린 것이다.

조용하던 내 핸드폰은, 이제 예상대로 여지없이 "카톡, 카톡" 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 이렇게 앉아 있으면 그 카톡이 아내의 것인지 내 것인지 도무지 구분이 되질 않았다. 아내의 카톡인 걸 내가 열어보기도 하고, 내 핸드폰이 카톡거렸는데 아내가 자신의 핸드폰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살겠나 싶었다. 아내는 기계에 약해서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하지?' 싶어 하는 표정이기만 해서 며칠 만에 내가 단안을 내려 내 카톡 알림음을 바꾸기로 했다.

 

재미있다. 카톡 회사가 설정해 놓은 알림음은 내가 보기엔 모두 기이하고 앙증맞다. "카톡"만 해도 그런데 "카톡왔숑"은 참... 다른 것들도 몇 번을 확인했다. "카톡카톡" "카카오톡" "카톡왔어" "뭐해뭐해" 그게 끝이다. 나는 이들에 대해 심사숙고했다. 온갖 생각을 다해 보았다. 결론은 이 알림음들 말고 다른 걸로 하면 별별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이 해석이 대단하거나 명석한 건 아니지만 쓸데없이 깊이 들어가지 않기로 하고 "카톡카톡"으로 바꾸었다.

 

그러자 내 핸드폰은 이제 더 부지런한 느낌이 되었다. 한 번만 "카톡" 하면 될 것을 "카톡카톡" 하니까 얼핏 들으면 카톡이 한꺼번에 두 개가 온 것 같고, 두세 개를 연방 보내는 사람이 있고, 동시에 여기서도 오고 저기서도 오면 이건 완전 난장판이 된 느낌이었다.

조용하던 내 세상은 종일 카톡이 오는 다른 세상이 된 느낌이고, 두어 군데서 동시에 보내면 아예 카톡 전용 핸드폰이 되어 그 조용하고 점잖던 핸드폰이 맞나 싶게 되었다.

 

이게 다 세상을 떠난 L 선생 때문이다.

그분은 나에게 각별했다. 나는 그분에게 각별한 척이라도 하고 싶어서 그동안 계절이 바뀔 때만이라도 연락을 했다.

지난겨울 어느 날, 운동은 하는지 묻자 마당을 몇백 보라도 걷는다고 했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올봄에는 돌연 연락을 하기가 망설여졌다. 없는 전화번호라고 할까 봐 두려웠고, 일어나지 못하고 완전히 누워서만 지낸다고 할까 봐 두려웠고, 사실은 "나는 이제 이 세상에 없습니다." 할까 봐 두려웠다.

 

그러다가 그분 밑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인사가 나를 방문했을 때 나는 용기를 내어 물었고, 내 예감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어느 지인의 전화를 받아 대화하며 다음 주쯤 카톡을 열겠다고 약속했는데 나와 함께 앉아 있던 세 사람 중 누군가 전화를 받는 중인데도 "(지금까지 안 한 걸 벼란간) 다음 주에요?" 하며 웃었다. 나는 그 순간 적어도 각별하다고 여기는 사람의 사망 소식은 들어야 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제 세상을 떠난 사람의 핸드폰에 전화번호가 들어 있는 사람에게도 부음을 전하지 않는구나. 그럴 수도 있구나... 이러저리 사람들을 연결하는 카톡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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