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봄에는 두어 차례 의식의 단절을 느꼈다.
'내가 왜 여기 앉아 있을까?' '가만있어 봐, 지금 뭘 해야 하는 거지?' '일단 아내에게 연락해야 할까?' '놀랄까?' '좋아하진 않겠지?' '얼른 아내 곁으로 가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긴 해.'......
그렇게 의식의 단절을 느낄 때마다 아침이어서 조금 전 잠이 깬 시각부터, 그렇게 해선 그 시각의 나를 파악할 수 없을 것 같으면 전날의 어느 시점부터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더듬어가면서 정신을 차렸다.
일전에는 돌연 현관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아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당황했지만 누가 보면 눈치를 채거나 이상해할까 봐 일단 출입문에서 좀 떨어져 무슨 딴생각을 하는 사람처럼 꾸몄다.
괜히 숨이 찰 때가 있다. 가슴까지 차오르는 저수지 물에 들어가 서 있을 때의 느낌? 그럴 때마다 숨이 차서 푸우 푸우 내뿜는다.
혹 아직 화가 안 풀렸나?
블로그 '방문 통계'를 보다가 가슴 아픈 편지(2009년 1월 9일, "교장선생님께")를 발견했다. 어느 선생님께서 내가 지독한 감기에 걸렸을 때 써 준 '처방전'이었다. "외국인과 결혼한 딸은 잘 살아갈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 우리 교육의 발전이 더디긴 하지만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기다려 달라, 울고 싶을 땐 그렇다고 이야기하라."
그 선생님이 누군지 잊었다. 그립다.
바른 자세로 좀 오래 앉아 있기가 거북하고, 그러다가 일어나면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운전석에서 내리면 한동안 서서 몸을 풀어야 걸음을 옮길 수 있게 된다.
오전에 시내(이 동네 다운타운)에 내려갔다가 올 땐 괜찮지만, 오후에 아파트 안 오르막길을 걸을 땐 힘이 많이 든다. 마치 누가 뒤에서 종아리를 잡고 말리는 것 같다.
이러면 어떻게 되나?
이렇게 해서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일단 다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초조하지 않다.
초조하지 않으니까 편안하다.
어느 것이든 호전되면 더 좋고 그렇게 되지 않으면 '그뿐'이다.
생각도 하고, 책에도 있었지만, 블로그 "봄비 온 뒤 풀빛처럼"을 읽으며 배우기도 하고 확인하기도 했다.
그 블로그를 쓰는 준서 할머님은 나와 동갑이지 싶다. 그렇다면 생일은 나보다 빨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것을 가지고라도 좀 장난스럽게 해석하고 싶어 한다. 끝까지라도 그럴 것이다. 그러면 더 편하게 배울 것 아닌가.
이야기가 딴 길로 왔지만, 나에게는 당연히 또 다른 변화가 있을 것이다.
그 변화를 기다려야 하나?
기다리지 않아도 잘 찾아올 것이다.
나를 찾아올 그 변화가 무궁무진해서 변화의 기간이 예상보다 훨씬 길었으면 좋겠다. 이 기대는 본능이다.
본능이므로 그렇게 되지 않아도 그래,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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