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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K 교수의 뒷모습

by 답설재 2026. 6. 13.

 

 

 

뒷모습은 슬프다.

이런 생각을 말아야지 고개를 저으면 더 슬프게 보인다. 앞모습은 씩씩하고 늠름해도 뒷모습은 쓸쓸해 보이고, 앞모습이 씩씩할수록 쓸쓸하다.

 

지인들이 하나씩 세상을 떠난다.

죽어서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영락없이 쓸쓸하고 슬프다.

누가 죽었다 하면 섭섭해하던 일들 때문에 저승으로 가고 있을 그의 뒷모습은 더 쓸쓸하게 다가와 나를 괴롭힌다.

 

제7차 교육과정은 나를 딴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서초구 우면동 한국교육개발원에서 그 교육과정을 개발할 때 나는 교육부 편수국 '이름 모를' 교육연구사에 지나지 않았다.

그 교육과정을 고시하고 적용 준비하고 있을 때,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를 선두로 제7차 교육과정의 단점을 지적하며 폐지 운동이 전개되었다.

그 얘기를 다 할 수는 없다. 전교조가 극렬하게 반대 투쟁을 하자 한국교총은 물론, 그 교육과정을 연구해서 교육부에 보고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한국교육개발원에서 독립한 기관) 연구원들마저 설설 반대하기 시작했다.

나는 서울에서 6개월 교감을 해보고, 다시 교육부로 불려들어갔고 제7차 교육과정을 사수(死守)해야 하는 장학관이 되었다. 이돈희 장관이 "저는 여기 교육부 안에서 사령관을 할 테니 장학관님은 야전사령관을 하십시오. 둘이서 어떻게든 지켜나갑시다!" 해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어느 날, 삼청동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강당에서 제7차 교육과정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자들은 너도나도 제7차 교육과정은 수준이 너무 높고 규정도 복잡하고 까다로워서 아무래도 수정해서 새로 발표하거나 적용을 미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말이 그렇지 그렇게 되면 한국의 교육행정 자체가 말할 수 없이 흔들리게 된다.

 

마지막 토론자로 어느 교원양성대학 K 교수가 등단했다.

그는 미소 띈 얼굴로 한국의 초중고 교원들은 자동차 운전으로 치면 지금 겨우 '티○' 수준인데 교육부가 제공하고자 하는 자동차는 '에○스' 수준이다, 이렇게 하면 교원들이 당황해서 운전(교육)을 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나는 K 교수의 그 미소 띤 표정이 얄미워 죽을 지경이 되었다.

 

토론회 사회자가 마지막으로 교육부 장학관이 인사말씀과 함께 교육부 입장을 이야기하겠다고 소개했다.

나는 다른 토론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하지 않았고, 교육과정 개정은 시대의 흐름에 의한 것이다, 문민정부의 교육개혁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시대적 요구다, 나도 교사 출신이지만 한국의 초중고 교원들은 정부의 교육행정이 후진적이어서 그렇지 실력은 세계 어느 나라에 비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티○'가 아니라 '에○스'를 주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제7차 교육과정을 위한 나의 피나는 하루하루는 20여 년이 훌쩍 지나갔는데도 지긋지긋해서 아직도 생각하기조차 싫다.

고등학교 3학년까지 새 교육과정이 적용되는 걸 보고 교장으로 나가 있던 어느 날, K 교수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슬픔이 가슴을 울렸다. 그때까지도 나는 K 교수를 미워하고 있었다. '티○ 교수 주제에...'

그러나 그의 부음을 듣는 순간, 너무나 미안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영안실에는 그 대학 학생들과 교수들이 쉴 새 없이 들락거렸다.

거기서 나는 아무에게도 내 입장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만 이후 20여 년 나는 K 교수의 뒷모습을 상기하며 지내고 있다.

"저는 나쁜 사람입니다. 그냥 두었으면 그런 인간이었을 리 없을 텐데 교육과정이 저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부디 너그럽게 받아들이시고 영면에 드셨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