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에서 영원한 고향을 찾는다. 하지만 극소수이긴 하나 사랑에서 영원한 여행을 찾는 이들도 있다. 이 후자의 부류는 어머니 대지와의 접촉을 꺼려야 하는 멜랑콜리적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다. 고향의 우울함으로부터 그들을 멀리 벗어나게 해 줄 사람을 그들은 찾는다. 그런 사람에게 그들은 충성한다. 인간의 체질을 논한 중세의 책들은 이러한 인간형이 품고 있는 먼 여행에 대한 동경을 알고 있었다.
발터 벤야민이 《일방통행로》(김영옥 외 옮김, 도서출판 길 2022)에서 이렇게 썼다.
저 사람이 나를 데리고 영원한 여행을 하겠구나 싶어 사랑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겠지. 나는 내일 아침 저 사람을 따라 떠날 거야. 나를 데리고 이 세상을 얼마든지 헤엄쳐 다닐 수 있을 만한 사람이야. 그러면서 사랑의 정처 없는 길을 떠났겠지.
저 사람과 함께하면 다른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희망, 기대, 예측, 꿈, 환상 같은 걸 갖는 경우를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
그런 꿈은 사랑으로부터 영원한 고향을 찾는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할까?

사람이 그걸 어떻게 다 이야기할 수 있나. 다 털어놓으며 살아갈 수 있나.
나는 아무 말 않고 지도를 보면서 여행했다.
지도책 어느 한 페이지 안에서도 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어느 도시, 거의 전부 내가 가보지 않은 곳들, 더구나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은 그 도시의 주변 수많은 마을들...... 그곳 사람들, 온갖 사람들...... 그 마을,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 행복해지곤 했다.
내가 다닌 교육대학은 2년제였다.
그 2년간 뭘 배웠나.
배우고 싶은 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어서 종합대학 3학년 야간부에 편입할 때 나는 지도를 공부하는 학과를 선택했다.
교수들은 신기한 걸 다 가르쳐주진 않았지만 그 시간이 즐거웠다. 신통하게 가르쳐주진 않았지만 지도 얘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그럼 지도에 대해 충분히 배웠나.
그렇지는 않았다.
내가 지도에 대해 배우고 싶은 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데 또 졸업을 하게 되었고, 대학원에 가서도 또 졸업을 해버렸고, 이후 마침내 수십 년이 흘렀는데도 나는 그 여행을 끝내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지도를 보면 여행을 떠난다.
발터 벤야민의 옛 지도에서처럼 나는 영원한 여행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이름 모를 어느 도시 외곽 지역 한 마을에서 아직도 잠들지 않고 가족들에게 뭐라고 떠들어대며 웃고 있는 아이가 보이는 것 같다. 나는 그 아이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다. 슬프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다. 이 글을 마치면, 그 아이를 조금 더 생각해 본 다음, 잠들기 전에는 어느 소도시에서 즐거운 혹은 꼭 즐겁지는 않아도 소박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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