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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아직도 끝나지 않은 지도 여행

by 답설재 2026. 6. 6.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에서 영원한 고향을 찾는다. 하지만 극소수이긴 하나 사랑에서 영원한 여행을 찾는 이들도 있다. 이 후자의 부류는 어머니 대지와의 접촉을 꺼려야 하는 멜랑콜리적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다. 고향의 우울함으로부터 그들을 멀리 벗어나게 해 줄 사람을 그들은 찾는다. 그런 사람에게 그들은 충성한다. 인간의 체질을 논한 중세의 책들은 이러한 인간형이 품고 있는 먼 여행에 대한 동경을 알고 있었다.

 

 

발터 벤야민이 《일방통행로》(김영옥 외 옮김, 도서출판 길 2022)에서 이렇게 썼다.

저 사람이 나를 데리고 영원한 여행을 하겠구나 싶어 사랑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겠지. 나는 내일 아침 저 사람을 따라 떠날 거야. 나를 데리고 이 세상을 얼마든지 헤엄쳐 다닐 수 있을 만한 사람이야. 그러면서 사랑의 정처 없는 길을 떠났겠지.

 

저 사람과 함께하면 다른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희망, 기대, 예측, 꿈, 환상 같은 걸 갖는 경우를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

그런 꿈은 사랑으로부터 영원한 고향을 찾는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할까?

 

 

 

내가 가보고 싶은 수많은 세상의 어느 한 곳

 

 

사람이 그걸 어떻게 다 이야기할 수 있나. 다 털어놓으며 살아갈 수 있나.

나는 아무 말 않고 지도를 보면서 여행했다.

지도책 어느 한 페이지 안에서도 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어느 도시, 거의 전부 내가 가보지 않은 곳들, 더구나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은 그 도시의 주변 수많은 마을들...... 그곳 사람들, 온갖 사람들...... 그 마을,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 행복해지곤 했다.

 

내가 다닌 교육대학은 2년제였다.

그 2년간 뭘 배웠나.

배우고 싶은 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어서 종합대학 3학년 야간부에 편입할 때 나는 지도를 공부하는 학과를 선택했다.

교수들은 신기한 걸 다 가르쳐주진 않았지만 그 시간이 즐거웠다. 신통하게 가르쳐주진 않았지만 지도 얘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그럼 지도에 대해 충분히 배웠나.

그렇지는 않았다.

내가 지도에 대해 배우고 싶은 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데 또 졸업을 하게 되었고, 대학원에 가서도 또 졸업을 해버렸고, 이후 마침내 수십 년이 흘렀는데도 나는 그 여행을 끝내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지도를 보면 여행을 떠난다.

 

발터 벤야민의 옛 지도에서처럼 나는 영원한 여행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이름 모를 어느 도시 외곽 지역 한 마을에서 아직도 잠들지 않고 가족들에게 뭐라고 떠들어대며 웃고 있는 아이가 보이는 것 같다. 나는 그 아이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다. 슬프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다. 이 글을 마치면, 그 아이를 조금 더 생각해 본 다음, 잠들기 전에는 어느 소도시에서 즐거운 혹은 꼭 즐겁지는 않아도 소박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