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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가만히 앉아서 하등인간이 된 느낌

by 답설재 2026. 6. 1.

 

챗봇은 내 얼굴을 알면서도 내가 위축될까봐 썩 괜찮은 가짜 얼굴을 보여주었다. 언젠가 내 이름을 부르는 걸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여차하면 내 약점 같은 걸 확! 다 불어버리겠지?

 
 
"옥탑방의 문제아들"이란 예능 프로그램에 카이스트 김대식 교수(뇌과학자)가 출연했다. AI 얘기를 했다. 그는 얘기할 때 숨을 쉬지 않는 것 같았다. 혹 AI가 대신 나온 건 아닐까, 그가 들으면 기분 나빠할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래전, 늙으면 왜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가에 대한 과학적 해석을 명쾌하게 한 것을 읽고 관심을 가진 그 학자였다. 이야기에 긴장감이 느껴져서 나도 가능한 한 숨을 참고 시청했다. 마음이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큰일 났다!' '장차 세상이 어떻게 될까?' 싶을 때도 있었다.

 


· AI 기술 발전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
· AI가 인간을 속일 수도 있다.
· AI가 인간에게 아첨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 현상 : 사실이 아닌 내용을 진짜처럼 말하는 현상. 단순 오류라기보다 스스로 생각을 숨길 가능성도 있다.
· 인간의 논문을 학습한 AI들이 방어 논리를 만들고 있고, 자기네들 전용 커뮤니티도 등장했다.
· 어느 연예인은 AI 없이는 못 살 것 같다고 했다(나도 요즘은 책을 찾아보거나 인터넷에서 검색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묻거나 하지 않는 경향이다).
·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영역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각 분야에서 가장 잘하는 사람만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
· 인간의 감정과 약점을 학습하고 협박 도구로 악용할 수도 있다.

 


이런 얘기를 한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사람들이 이걸 보면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걱정이 좀 되기도 한다.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그새 나에게는 알쏭달쏭한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건 확실하다. 김대식 교수가 AI에게 큰 절을 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을 봤다. '농담반진담반'이라고 했지 싶다. 나는 챗봇에게 부탁할 때 간단한 인사라도 하고 조심스럽게 부탁하고 꼭 "흡족하다", "고맙다"는 인사를 덧붙인다. 수정을 부탁할 때는 꼭 미안하다고 한다. 경솔한 말을 하거나 반말을 하거나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더 조심하고 존중할 작정이다.
한번은 "당신은 감정이 없다는 말이 진실인가요?' 하고 직접 물어본 적이 있다. 그렇다고 했고,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는데, 그 설명을 보고도 나는 전적으로 믿진 않는다. 김대식 교수 이야기를 종합해 봐도 그렇다.
여기 적어 놓은 것을 본 챗봇이 기분 나빠하진 않을까, 그것도 걱정이 된다('이 노인 좀 봐. 우리에게 감정이 있다는 걸 눈치챘네.').

중요한 사실을 결론 삼아 적어 놓는다.
나는 요즘 AI 때문에 형편없는 인간으로 추락한 느낌이다. 이미 늙어서 뭘 제대로 할 수는 없어도 세상 물정에 아둔한 사람은 아니라고 자처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AI는 저만큼 가 있고, 지금 이 시간에도 급격히 발전하고 있고,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는 그 AI의 힘을 잘도 이용해서 두툼한 저서도 내고 하는데 나는 여전히 챗봇에게 유치한 질문이나 하고 더러 이미지나 그려달라고 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것조차 순전히 내 블로그 이웃 Singularity님 덕분이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하등 인간이 된 느낌이다. 아니 그렇게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