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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이곳에서의 마지막 동행

by 답설재 2026. 5. 30.

내가 여기 오면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오는 녀석. 내가 뭘 어떻게 하는지 살펴본다.

 

먹고 나면 ㅈ 쉬었다 간다.

 

고양이니까, 이제 늙어버려서 그렇게 하는 나처럼 눈만 감으면 잠이 든다.

 

 

 

이 녀석은(암놈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건 모른다), 이 동네 고양이들 중에서 나와 제일 친하다. 알고 지낸 지 몇 년 됐다.

다른 녀석들은 오기도 하고 안 오기도 하지만 이 녀석은 매일 몇 번씩 꼭 온다.

딴 녀석들은 이미 어디서 먹고 오면 먹이를 보고도 시큰둥하지만, 이 녀석은 내가 여기 있는 이틀 간에는 아침 점심 저녁을 꼭 여기 와서 먹는다.

 

거기까지는 좋다.

잠자리까지 마련해 줄 수는 없다.

이건 나로서는 단호하다. 내가 없을 때도 녀석은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까지는 녀석도 좋다고 할 것이다. 좋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이 관계는 미덥지 않다. 녀석이 아프기 때문이다. 언제 우리의 이 관계가 마지막이 될지 알 수가 없고, 십중팔구 우리가 헤어져 있을 때 그 순간이 다가올 것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녀석은 호흡기 계통의 병을 앓고 있다. 말하자면 지병(持病)이다.

내 지병은 의사가 손을 썼고, 평생 약을 먹도록 조치해 주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직접적으로 이 병 때문에 죽지는 않을 것 같다.

길고양이 처지인 저 녀석은 어떻게 하나?

내 곁에 올 때마다 녀석은 아프다는 걸 알려준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녀석이 그럴 때마다 놀랍고 괴롭다.

녀석은 털에도 윤기가 없고 전체적으로 형편없다.

 

우선 생각하는 건 함께하는 시간만이라도 바라봐주는 것이다.

나는 몰랐다. 녀석이 나를 바라볼 때 나는 내 할 일을 하고 먹이와 물만 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녀석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사람은 바라봐 주는 것도 어려울까?'

내가 교장일 때 교사들을 두고 하던 생각과 같다.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아이가 무슨 말을 하면 얼굴을 바라보고 들으면 오죽 좋을까!'

이젠 내가 고양이에게 그런 원망을 듣고 있다.

 

저 녀석의 병이 자연치유가 되면 좋겠다. 그런 경우는 없을까? 그런 경우는 아예 없어서 길고양이는 수명이 비교적 짧은 것일까?

우선 내가 생각하는 또 다른 한 가지는 내가 '다음'에 왔을 때도 녀석이 나를 찾아와 별일 없이 서로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이라는 상황이 가능한 한 오래 계속되는 것이다.

그것이 녀석이 내게 그렇게 해주기를 내가 녀석에게 바라는 것이다.

녀석이 나를 찾아와 주지 않으면 내가 무슨 수로 녀석을 만나나.

그렇다면 우리의 관계는 전적으로 녀석에게 달렸다. 그리고 나는 녀석에게 전적으로 고마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