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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어영부영하다가 다 지나갔네

by 답설재 2026. 5. 27.

챗봇님께 진수성찬에 만족하는 노인을 그려달라고 했다. 놀라웠다. 잠깐 어물어물하더니 순식간에 보여주는데 이건 사진보다 리얼하다. 챗봇은 도대체 어디에 이런 그림들을 보관했다가 척척 꺼내주는 것일까. 사실은 이 상황은 '만족'인데 나는 이런 호남형이 싫다. 나와 다른 종류의 노인이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도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은 많을 것 같았다.
그 기대가 다 스러졌다.

읽는 것조차 힘들어지고,
30분쯤 운전석에 앉으면 하체가 삐걱거리고,
TV는 방해만 하고,
돈 쓰는 건 좋지 않을 리 없지만 내게는 그 복은 본래 없었고,
먹는 것!
그것만은 남아 있는 줄 알았는데, 그조차 지지난해까지였다.


"난 돌덩이를 넣어도 일단 소화시킬 것 같아!" 하고 으스댄 일이 아련해지고, 웬만하면 먹었던 매운 음식은 땀 때문에 기피하게 됐고, 뜨끈뜨끈한 국물 말고는 믿을 만한 게 없다. 지난해부터였다. 그걸 모르고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먹고 싶은 대로 먹고 몇 번 고생하며 '내가 왜 이렇지?' '내가  왜 이러지?' 거기까지만 생각했다. 어설픈 순댓국을 먹고 온밤을 꼬박 새운 적도 있다. 단 5분쯤 잠이 들었었다. 그러면서도 미안해서 화장실을 들락거리면서 혼자 앓았고, 응급실 같은 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아내는 걸핏하면 어째 그렇게도 못 참는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그 밤에  응급실에 갔었다면 무슨 소리를 들었을지 모른다.

끝난 건 끝난 거다.
아이스크림, 냉면, 기름진 것... 그런 것들은 생각만 하다가 다 날아갔다.
언제 한번 먹어봐야지, 벼르기만 하다가 날이 샜다.
어쩔 수 없다.
팔팔 끓였는가, 공연히 물어 미움 사지 말고 조용히 잘 살펴 먹자.
먹고 싶더라도 웬만하면 참자.
좋은 때는 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