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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계수나무의 봄 여름 가을

by 답설재 2026. 5. 21.

 




내려다보이는 계수나무의 저 잎들이 얼마나 신기한지!

단 하나의 잎도 햇빛을 덜 받지 않게 하려는 확실한 의도가 보인다.


가을의 단풍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그 아름다움을 설명하기가 싫다. 괜히 써놓았다가 소설가 마쓰이에 마사시의 표현을 보게 되면 우스운 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의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火山のふもとで)"를 읽고 계수나무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실망스럽다면 그 아래에서 바라보는 그 가지들이다. 마치 우산살이 잘못된 것 같은 모습 같다.
내가 보기엔 그렇다. 폭풍에 뒤집어진 비닐우산을 억지로 바로 했을 때 우수수 부서져버리던 그 모습이 떠오르게 하는 가지들의 모습은, 저 잎들의 아름다움에게 모든 걸 갖다 바치고 남은 것들일까?

그러므로 계수나무는 오묘하다.
하기야 오묘하지 않은 식물은 없다. 오며 가며 눈에 띄는 모든 것들이 그렇다.
식물만 그런 것도 아니다. 동물도 다 오묘하긴 하다.

사람은?
문득 '나무'라는 별명을 쓰던 사람이 생각난다. '계수나무'에  착안했는데 더 상징적으로 '나무'라고만 했을 수도 있다. 이제 물어볼 수도 없게  되었으므로 그립다.
그렇게 오묘한 사람도 있고, 나 같은 어설프고 허접한 인간도 있다.

완벽한 건 더 추구할 필요가 없게 된 이론이나 추상적인 것밖에 없을 수도 있다.
인간은 완벽에서 무한히 멀리 떨어진 경우, 완벽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경우, 그리고 그 사이의 무수한 지점에 놓인 수많은 사람들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나무'라는 사람은 나로부터는 너무 멀어서 내 이웃은 아니고, 그저 그리운 대상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