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에서 근무할 때 외경심을 가지고 모신 상사가 있었다.
이유는 충분했다. 유능하고 과감하고 다정다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분은 몇몇 사람과는 퇴임하고 나서도 그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다.
한번은 어디 교외에서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을 데리고 술을 마시다가 전화로 나를 호출했다.
밤이 좀 깊어가고 있었다.
전화를 한 선배에게 가지 않겠다고 했더니 다른 선배가 전화를 바꾸어 재차 내 의사를 확인했다.
분명한 의사 표시를 했는데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럴 리가?' 하고 확인하려고 했으므로 단호하고 분명하게 거절의 의사를 전했다. 초대인지 호출인지 모르겠으나 업무 관계는 아니고, 사전에 약속도 없이 밤에 우리 동네도 아닌 먼 곳에서 나를 부르는 건 합리적이지 않으며, 굳이 이 호출에 응하고 싶지 않다고, 어떤 의미인지 확실하도록 이야기했다.
덧붙인 것도 있다. 나는 이제 그 옛날의 '○ 선생'이 아니다, 내가 존경하는 그분과 똑같은 일, 그분의 일을 그대로 하고 물러난 사람이다, 호칭을 바꿔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지금은 나도 퇴임한 지 오래되었다. 퇴임 후의 쓸쓸함을 실감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옛날 나와 함께 근무하던 사람들을 찾아 관계를 복원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럴 수도 없고 그럴 이유나 필요도 없다.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냉혹한 사실을 수긍하지 않고 그 관계를 끝까지 유지하면서 살아가고 싶어 하는 건 어리석은 일, 잘못 사는 일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가령 블로그나 카페를 마련해 놓고 상대방이 개설한 블로그나 카페 같은 건 안중에도 없이 자신의 블로그나 카페에 고분고분 드나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오만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내가 잠깐씩 함께 지낸 그 아이들은 이미 오래전에 다 성인이 되었고, 길거리에서 만나면 나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일 사람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일쑤 57년 전 그 교실에 지금도 그 아이들이 앉아 있는 모습을 떠올린다.
내 아내는 제자들에게 부디 아무개야, 아무개야 하지 좀 말라고 부탁했었다. 그런데도 그게 어려워 이미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그들에게 나는 예전 한 교실에서 지낼 때처럼 "재숙아" "재숙아" "준호야" "준호야" 한다.
그러니까 옆에 누가 있어 다 듣고 있으면 그들끼리 얼마나 민망하겠나.
나는 또 퇴임한 지 오래되어 현직에서의 일들을 거의 다 잊어가고 있으면서도 함께 근무한 사람들은 아직 새파란 얼굴로 거기 그 직장에 남아 있을 것 같은 느낌으로 지낸다.
그러니까 느낌은 그렇더라도 사람들을 대할 땐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들은 나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지낸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나와의 관계는 완전히 끝난 상태라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
이리 모이고 저리 모이고 하다가 뿔뿔이 흩어져 제 갈길을 가는 것이니 쓸쓸해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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