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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가련한 A 교수

by 답설재 2026. 5. 12.

 

 

 

1967년 그곳 시민극장에서 팝송대회가 열리게 되었다. A는 내가 영어를 좀 하는 줄 알고 둘이서 한번 나가보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나는 내 주제 파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르거나 말거나 "안 된다!"로 일관했다.

 

시골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받아서 희한하거나 초라하거나 괴상망측한 교장 밑에서 악전고투할 때 "학업성적이 우수하고 품행이 방정하여" 대도시에 발령받은 아무개와 아무개는 말귀를 좀 알아듣는 고학년을 담임하되 가령 아이들이 청소를 하거나 말거나, 두 팀으로 나뉘어 어느 편이 먼지를 더 많이 일으키는지 다투거나 말거나, 모든 것을 방치한 채 촌음을 아껴 공부에 매진한 결과로 마침내 교수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그중 한 명이 A였다. A는 서울에서도 명문인 B 대학 영문과 교수가 된 것이어서 소식 들은 동문들의 부러움을 샀다.

 

A는 서울지역 동문 모임에는 나오지 않았다.

넌지시 그걸 지적하는 사람이 있을 때 나는 그를 변호했다. 초등교사가 교수가 되었으니 오죽 조심스럽고 힘들겠나, 남들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그는 해야 살아남지 않겠나, 나중에 고참이 되면 나오지 않겠나......

그는 나중에 한가롭게 되자 정말로 동문 모임에 나왔다. 그러나 중간에 교수가 되었으므로 끝까지 고참 대접을 받지 못했겠지, 학과장 같은 걸 하지 못했겠지, 끝내 현직일 때는 나오지 못했고, 정년퇴임을 한 후였다. 그것도 사전에 내게 연락해서 내가 나간다면 그도 나왔고, 내가 이번에는 나갈 수가 없게 되었다 하면 그도 나가지 않았다.

 

교수로 있을 때는 늘 희망이나 기대, 의욕 같은 게 있으므로 당연히 그렇지 않았겠지만, 퇴임하자마자 그의 생활은 곧 곤란을 겪는 것 같았다.

책이 너무 많아서 아파트 한 채를 빌려 그 책들을 넣어 놓았다고 하더니 이내 그 아파트를 처분했다는 것이었다. 아들만 둘인데 큰아들은 어릴 때부터 클래식 듣기에는 고수인데 다른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했고, 작은아들은 대학 졸업 후 취업하지 않고 프랑스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고 했다.

 

내 코도 석자지만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그 큰아들을, 일을 잘하면 정규직 발령을 내기로 하고 알음알음에 따라 우선 반년간 임시직으로 취직을 시켜주었는데 그동안 여러 일터에서 알바를 했으나 가는 곳마다 오래 버티지 못한 이유가 드러났다. 도무지 다른 직원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았고 귀에 꽂힌 이어폰을 빼는 법이 없는 데다가 맡은 일에 여유가 없고 원활하지 못해서 더 붙여 두라고 청탁할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나는 이후에도 A 교수에게 클래식에 전문성이 있으니까 그에 어울리는 일을 마련해 보자고 오랫동안 간청했다. A 교수는 비관적이었다. 내가 구체적으로 제안을 해도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는 식이었고, 나중에는 동생이 있으니 자신이 죽고 나면 밥을 굶기기야 하겠느냐고 했다.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요즘이 '흥부놀부 시대'도 아니지 않은가! 누가 누구에게 밥을 준다는 것인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자식 문제에 용감하게 대처하는 경우가 많기야 할까마는 아버지라는 사람이 그렇게 비관적이어서 애가 타지만 더 이상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사정이 그러하므로 A 교수의 부인인들 마음이 편할 리가 없을 것이다.

설상가상, 그러는 사이 그는 전화할 때마다 어째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하더니 병원에서도 원인을 찾지 못한다고 했고, 게다가 전화를 하면 피하는 느낌을 주었고, 만나서 이야기 좀 하자고 하면 자꾸 미루었다. 삶에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요즘 그 친구 생각을 하지 않는 날이 거의 없다.

그럼 나는 아무 걱정이 없나?

그런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내 걱정도 적진 않다.

그러나 나는 그가 건강을 회복하기를, 그의 건강이 나만큼은 되기를, 두 명의 자식 문제에 숨통이 트이기를, 뭐가 어떻게 되었다고 희망과 기대를 가질 수 있는 소식이 들려오기를 고대하고 있다.

 

그 친구 생각을 하면, 사람이 희망이나 포부를 가진다고 해서 젊음을 소모(消耗)하면서까지 너무 발버둥을 치는 것도 생각 좀 해봐야 할 일 아닌가, 이제야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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