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오륙 년쯤 전 그 생각을 했었다.
'이제부터 이 사람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만나자'
누구를? 누구든.
그러면 뜻깊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흐지부지'가 되었는데, 최근 그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그렇게 의식해서가 아니라 저절로 그 생각이 들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십오륙 년쯤 전의 그 생각은 스스로 가상하긴 해도 요즘만큼 절실하진 않았던 것이다.
엊그제 금요일 저녁에는 1989년에 만난 친구가 전화를 했다.
그때 전국 초중고에서 온 삼백 몇십 명이었던가, 그중 남녀 열 명이 3년을 함께했고, 우리는 지금까지 이어왔다.
그와 나는 생각날 때마다 전화는 하는데 이젠 서로 떨어져 있는 거리나 몸 상태나 쉽게 만날 수는 없게 되었다. 내가 교육부에 근무할 때는 누가 봐도 바빴기 때문에 오랜 세월 그가 자주 찾아준 것을 생각하면 그 후로는 내가 그를 찾아가야 하는데 그게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어서 맨날 전화로 안부나 물으며 언제든 만나면 되는데 무슨 걱정을 하느냐고만 했다. 그런 말은 그도 나도 번갈아가며 한 것 같다.
이번엔 그가 전화를 했고, 나는 올여름엔 용산역 어디쯤 시원한 곳에서 얼굴 좀 보자고 했다.
그는 당장 좋아했다.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당연히 내가 먼저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가 사라지고 나면 그때의 세상은 얼마나 허전할까.
괜히 얼굴 좀 보자고 했나? 그냥 지내면 될 것을 무슨 의식처럼 만나는 게 좋은 일일까? 서로의 처자식 근황까지 소상하게 파악하고 있으니, 그가 거기 있다고 생각하며 지내면 마음 편할 것을 만나면 뭐가 그리 좋을까?
여름이라고 해놓았으니까 더 생각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오늘 점심에는 전철역 건너편 한방삼계탕집에서 두 달마다 날짜를 잡는 세 사람이 모임을 가졌다.
그들은 차로 30분쯤 떨어진 곳에 살면서도 내가 연장자라고 꼭 이 동네에서 만난다.
자리에 앉자마자 차관을 지낸 K 교수가 암에 걸려 8년째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 내가 암은 한 달 약값이 천만 원 정도라는 얘기를 했더니, 연금이 있긴 하지만 8년이면 가족들이 돈을 다 썼을 것이라며 이제 그만 떠나는 것이 차라리 좋을 것이라고들 했다.
헤어질 시간에 Y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선배님, 우리 십 년은 더 만납시다!"
나는 좋아하며 그러자고 했다.
헤어져 돌아오며 생각했다. '모든 게 다 마음을 흔드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