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앞을 지나는데 차에서 내려 서성거리는 택시 기사들 얘기가 들렸다.
"동지섣달이 새로 오나, ○발!"
다른 기사는 허허거리고 웃었다. 웃지 않고 어떻게 하겠나.
또 뭐라고 하는데 더 들을 필요가 없지 싶었다. 동지섣달이 새로 온들 욕을 할 것까진 없고, 욕설로써 해결될 리도 없다. 이런 날씨는 AI도 해결 방법을 모르고, 잘은 몰라도 과학자나 강대국 대통령들도 어쩔 수 없지 싶다.
볼일을 보고 돌아오는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몇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가 이웃 동네로 가는 55번 버스가 오자 우르르 다 타고 나만 남았다.
공기도 차가운데 분위기는 더 썰렁했다.
자리에 앉아봤다가 차가워서 바로 일어섰는데, 정류장 뒤 병원 출입구 옆에 자리 잡고 사시사철 채소 여남은 가지를 팔고 있는 아주머니가 큰소리로 외치며 들어섰다. "어이 추워! 얼어 죽겠네!"
아주머니는 스모 선수 같고, 목청도 기차 화통 삶아 먹은 것 같다.
뭐라고 더 지껄여서 나 말고 누가 더 있나 싶어 둘러봤지만 역시 나 혼자였다.
'화통 아주머니'는 이제 춥고 바쁜데 공연히 전화질이라느니 어쩌니 중얼거렸는데 그게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면 왜 그렇게 언성을 높여 지껄여대는지 도무지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나는 불안했다. 저 여자가 저러다가 나한테 덤벼드는 건 아닐까?
그 순간, 공연히 '전화질'인 노인이 진짜 또 전화를 했다. 아주머니는 당신(답설재)도 듣기나 해 보라는 듯 스피커폰을 켜고 전화를 받았다. 기차 화통 삶아 먹은 그 목청으로 추워 죽겠다고 했는데, 그 미세먼지 쉼터가 떠나갈 것 같았다.
노인은 사연도 알맹이도 없는 전화질을 계속했다. "오늘 진짜 그렇게 추워요?" "아침은 먹었어요?"...... "저녁에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버스가 왔을 때 나는 도망치는 느낌이었다. 저 스모·화통 아주머니가 확 덤벼들면 나는 맥없이 쓰러지고 말 것이다. '어? 채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픽 쓰러지네?' 쓰러진 나를 내려다보며 여자가 그러겠지.
쓰러져서 옷깃이 풀어지면 겉옷은 얇은 여름 점퍼지만 셔츠는 두툼한 한겨울용이라는 것도 밝혀지겠지.
스모·화통 아주머니가 그러겠지. 영감쟁이들은 다 실없는 것들이야! 꼴에 사내라고 공연히 전화질이거나 병약해서 맥없이 쓰러지는 이 영감쟁이처럼 겨울옷 입은 사실을 숨기려 들거나......
날씨가 봄 다우면 좋겠다. 아침엔 겨울 같고 한낮엔 여름 같아서 몸이 정신을 잃었다. 걸핏하면 재채기를 해대고 머리가 아파서 끙끙 앓는다. '애꿎은' 판피린, 타이레놀만 자꾸 축낸다.
겨울도 아니고 그렇다고 봄이나 여름도 아니고, 이게 뭔지 원...
요즘 같으면 겨울, 봄, 여름 중 딱 한 가지만 고르라고, 어느 거라도 좋으니 확실히만 해 달라고 주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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