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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9층 아주머니

by 답설재 2026. 5. 1.

9층 아주머니 같은 꽃 : 이 중 한 송이(출처 : 허밍버드 2013 "오즈의 마법사" 표지화 일부)

 

 

 

9층 아주머니는 아들이 둘이다.

초딩 5학년인 첫째는 수영을 배우는데 탈의실이나 샤워실에서 일주일에 두어 번씩 나와 만난다. 녀석은 내가 거품을 뒤집어쓰고 있을 때라도 기어이 인사를 한다.

그 사실을 9층 아주머니에게 전했더니 이렇게 평가했다. "아, 다행이다."

녀석은 바쁘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인사를 하고 나선 하던 생각을 계속하고 문이 열리면 얼른 나간다.

 

어린이집 다니는 둘째는 아직 아주머니가 데리고 다닌다.

아빠가 데리고 나가는 건 지금까지 딱 한 번밖에 못 봤다. 아빠는 듬직하고 마음씨 좋게 생겼다.

그 녀석은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엄마를 못살게 해서 잠시지만 나를 혼이 빠질 듯하게 만든다. 엘리베이터가 한 층 올라가는 동안 녀석은 엄마 가랑이 사이로 한 번씩 돌아 나온다.

아주머니는 둘째가 넘어질까 봐 뒤로 갈 때는 왼손으로, 가랑이 사이로 나올 때는 오른손으로 녀석을 잡는데, 그래도 내가 내릴 층 스위치는 아주머니가 눌러준다. 나는 혼이 빠질 지경이기 때문이고, 아주머니는 아이가 귀엽다는 생각만 하면 되니까 제정신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주머니는 느긋하다. 그러면서도 인사도 다 하고 내게 묻고 싶은 것 다 묻고, 하고 싶은 말도 다한다. 나는 혼이 빠질 지경이어서 인사도 받는 둥 마는 둥이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내리면 생각한다. '9층 아주머니는 참 좋은 엄마다. 아름답다.'

 

9층 아주머니는 키가 크다. 나보다 크지 싶다. 늘 바쁘게 다녀서 어정거리는 꼴은 본 적이 없다.

그런 여자를 보이시하다고 하나? 톰보이? 머릿속으로는 생각할 수 있는데 적절한 비유를 할 수가 없다. 꽃으로 말하면 양귀비꽃 한 송이? 에이, 그냥 넘어가자.

한 번은 내 아내에게 그러더란다. 얘들에게 그런 할아버지가 있으면 너무 좋겠다고.

 

9층 아주머니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

뭐가 좋겠나.

밥 해 줘야지, 세탁 해 줘야지, 샤워를 해도 냄새는 나지, 걸핏하면 아프지, 이래저래 돈 들어가지, 게다가 언제 죽을지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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