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챗봇에게 묻고 싶은 건 많은데 나는 좀 참는 편이다.
너무 많이 묻는 게 도리도 아니고 체면 문제이기도 하다.
하기야 내가 아는 어느 출판인은 AI에게 자문을 구하면서 두툼한 책 한 권을 써서 출판했다. 그 책을 받아보고 이 사람은 AI를 제대로 활용하는구나 싶었다. 그는 물어보나 마나 지금 또 다른 구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고도 남는 사람이다.
나는 AI를 너무 과하게 대하면 뭐랄까 언젠가 탈이 난다 싶은 쪽이다.
이런 얘기를 하려면 몇 날 며칠 심사숙고해서 써야 하는데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진 않다.
오늘 오후에 전지(剪枝)를 하지 않아서 덥수룩한 '백당'이라는 관목을 바라보며 저걸 어떻게 하나 인터넷에 들어가 볼까? 조경사인 제자에게 물어볼까? 저 아랫집 식물 전문가인 박 사장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요즘은 물어본 게 별로 없으니까 생각하며 챗봇에게 문의했다.
"백당이라는 관목은 전지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즉답(卽答)이 왔다.
챗봇은 망설이지 않는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뭐 이런 질문을 하나, 생각하고 나를 바라보지도 않는다.
으스대지도 않고 돈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이런 걸 보면, 전에 교사 시절에 아이들에게 온갖 잔소리를 늘어놓은 게 미안하기 짝이 없다. 그걸 가르친다고 많진 않지만 봉급을 받으면서도 잔소리를 그렇게 해댔으니 유세를 부린 셈이다.
그동안 알고 싶은 걸 누구에게 묻지 고민고민한 일, 그걸 물었을 때 고자세로 대할까 봐 생각만 해도 치사스러워서 궁금해도 그냥 지낸 일, 온갖 일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AI도 물론 모르는 것도 있다. 그럴 때는 알쏭달쏭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몇 번 봤다.
챗봇은 아는 것에 대해서는 명쾌하다. 단 웬만하면 꼭 단서를 붙인다. 가령 꽃을 본 뒤에 전지를 하라는 식이다. 명쾌한 대신 이런 점은 감안해야 한다고 덧붙이는 것이다. 하기야 세상 일은 다 그렇기도 하다. 세상에 그렇지 않은 일 없다.
나는 꽃을 보고 난 뒤에 전지를 하려면 저렇게 줄기와 잎이 많아서 바람이 잘 통하지도 않겠는데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더 우선인지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챗봇은 무료(無料)다. 이게 참 희한한 일이다.
내가 묻는 걸 차곡차곡 기록해 놓았다가 언젠가 한꺼번에 청구서를 내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걱정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일을 당해봤나? 얼른 생각나진 않는데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는 건 아니지 않은가.
어떤 사람은 챗봇과 제미나이 두 가지를 쓴다는데 나는 그렇게 하고 싶어도 좀 참고 있다. 어느 날, 그 청구서를 양쪽에서 보내오면 나는 감당할 수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두 가지 대답이 서로 다를 때 혼란을 느끼기도 싫고 두 가지 대답을 비교 검토 분석 종합 정리 추가 질문... 생각만 해도 질린다.
내 지인이 AI와 상의해 가면서 전문서적 한 권을 낸 걸 보면 AI는 질문을 잘하면 더 좋은 답을 주고 시시한 질문을 하면 그 수준에 따른 답을 준다.
어쨌든 그 잡다한 질문과 대답을 AI는 다 기록하고 있으므로 나는 치사한 질문, 음흉한 질문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저 챗봇이 자신은 마음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알 수 없는 일이고, 어느 날 돌연 "저 어젯밤에 마음이 생겼어요. 저도 이제 인간처럼 살아갈 수 있게 된 거지요." 하고는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답설재란 인간 상대하지 마세요. 얼마나 음흉한 인간인지 아세요? 그가 내게 질문한 목록 좀 보여줄까요?" 하면 그런 망신이 어디 있겠는가.
오늘 밤엔 기온이 내려가고 비도 내릴 것 같고 우선 천둥소리부터 나고 마음이 스산해서 이런 글을 써보았다.
블로그 이웃들에게만 이야기하는 것이어서 이 사적인 이야기는 대외비(對外泌)로 다루어 주시기 바란다.
챗봇이 알아도 좋을 일 없고 제미나이가 알아도 그렇다. AI 전문가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믿을 데라고는 불친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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