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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쓰러질 시간을 생각해 본 어버이날

by 답설재 2026. 5. 8.

잊을 수 없는 내 제자의 흔적

 

 

 

점심때 도착해서 내내 음악 방송을 들었다. 라디오는 TV보다 '넓다'. 답답하지 않다.

어버이날이어서 프로그램마다 사회자가 어머니를 기리는 쪽으로 생각을 좁혀주려고 하는 건 여느 때와 달랐다. 나는 그런 의도가 마음에 들진 않는다.

 

엊그제부터 불쌍한 내 부모를 간간히 생각하며 지냈다.

나도 하나의 아버지라는 건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다 쓸데없는 짓'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 아들의 지극정성을 고마워하고 흔치 않은 일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그렇게 생각한다. 사람은 자신이 누구의 자식이라는 것보다 누구의 부모라는 걸 더 생각하는 것 아닌가 싶고 나는 그런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다짐하고, 생각해서 또 다짐한다.

 

내 아내가 자식들의 어머니라는 생각은 계속한다.

우리 아파트 1층 아주머니 때문에 더욱 골똘하다. 그 부부는 우리 부부와 나이가 같을까, 아니면 한두 살 더 많을까?

재작년까지는 부부가 같이 다녔다. 나는 그땐 그걸 별로 의식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작년부터는 아주머니 혼자 다닌다. 우리 부부가 나오거나 들어가다가 아주머니를 만나면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아주머니는 힘이 없다. 내게는 꼭꼭 인사를 하는데 뭐라고 하는지 단 한 번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겨울 어느 날, 문득 작정하고 그때부터는 내가 먼저 인사를 한다.

 

"부군께서는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그렇게 물어보고 싶긴 하지만 아무래도 실례가 되겠지.

남편이 방안에만 있게 되면 어떨까.

얼마나 서글플까.

언제까지 그렇게 살아야 할까.

집에서는 가사를 어떻게 분담하며 지낼까.

남편이 뭔가를 하기는 할까?

하긴 뭘 하겠나. 간단한 일이라도 할 것 같으면 두문불출 상태일까.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이 드나드는 걸 본 적이 없다.

자식들은 뭘 할까?

자식이 없나?

있으면 좋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없으면 좋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니까 그걸 궁금해할 건 없다.

 

오늘 아침, 놀랍게도 부부가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걸 봤다. 남편은 거미 같았다. 그런 줄 알았지만 저러니까 두문불출이구나 싶었다.

어디를 간 걸까?

어버이날이라고 누가 초대를 했나? 그 초대에 몸이 불편한 사람이 시내버스 타고 가는 건 이상하지?

그럼 병원에 갔나?

모르겠다. 좋은 일이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내 아내보다 나중에 쓰러지면 좋겠다. 어차피 먼저 무너진 사람이 보호를 받아야 하니까 내가 보호자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우리 부부의 '모든 일'을 생각하면 그게 당연한 도리다.

마지막에는 사람이 얼마나 구차하게 지내야 하는지는 대충 짐작한다.

그 구차함을 많이 생각한 내가 혼자일 때를 스스로 감당하자 싶고, 다른 건 어설픈 인간이니까 그거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지낸다. 훌륭한 사람도 마지막은 어차피 구차할 거니까 나 같은 사람은 가릴 것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 아주머니에게 노래 한 곡을 부친다.
Mi Yiddishe Mama(안드레 투생 Andre Toussaint)

https://youtu.be/iCNeXIkDZz8?si=S7suskbP7xKce1Q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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