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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과정·교과서

내가 처음 가진 책, 내가 처음 만난 교과서

by 답설재 2026. 4. 27.

 

 

 

이 책이 내가 처음 받은 교과서이고, 내가 처음 만난 책이다. 그때까지는 한자로 된 필사본만 봤다.

그때는 우리나라가 그런 형편이었나?

아니다. 내가 캄캄한 산골 아이여서 그렇다.

 

6학년이 되었을 때 도시에 가면 동화책이 있다는 말을 듣고 우리 면(面)보다 큰 이웃 면의 장날, 쌀 한 자루를 갖고 가서 팔아 책을 사려고 둘러봤더니 땅바닥에 책을 널어놓은 책 장사가 있긴 했지만, 내가 읽을 만한 책은 한 권도 없었다. 그냥 돌아오기가 섭섭해서 대중 월간지 "삼천리"를 한 권 사가지고 와서 '열독(熱讀)'했다. 

 

제자가 장가를 들게 되자 샘이 난 훈장이 첫날밤에 이걸 물에 타서 마시라며 생콩가루를 주었으므로 제자는 그날 밤 설사를 하느라고 색시 가까이 갈 겨를이 없었다. 그 제자가 색시와 의논해서 스승에게 선물한 것은 자신이 설사한 것을 유지(기름종이)에 싸고 또 싸고 수십 겹으로 싸서 훈장에게 내밀었는데 훈장은 그게 귀한 선물인 줄 알고 부인과 함께 애써서 풀고 또 풀었다는 만화는 평생 잊히지 않았다.

 

이야기가 딴 길로 갔다.

그때는 그런 산골이어도 아이들은 많이 태어났다. 그 작은 동네에서 학교 가는 아이들이 아마도 스무 남은 명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 또래 아이들이 학교를 다 가는데 우리 부모는 나를 학교에 보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화를 낼 줄도 몰랐다. 화는 나중에 살아가면서 두고두고 많이 냈다.

장날 고모에게 가서 시장 가는 길에 나를 학교에 좀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고모는 두말하지 않고 그렇게 해주었는데 그 한 가지는 고모가 두고두고 고마웠다. 왜 선뜻 그렇게 해주었을까?

나중에 중고등학교나 대학 동기들이 왜 자기네보다 나이가 많은지 물었을 때, 그건 별로 심각한 질문이 아니어서 대충 둘러대었다. 6·25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내가 총에 맞아 죽을까 봐 학교에 보내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이야기가 또 딴 길로 갈 뻔했다.

나는 1학년 1반이 되었다.

담임은 교감 겸임이었는데 키가 크고 뚱뚱한 분이었다. 그때는 교실에 책걸상이 없던 시절이었다. 가마니를 깐 맨땅에 앉아서 바로 앞에 서서 뭐라고 이야기하는 선생님을 바라보면 미륵불 아래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나와 고모에게 난감해했다. 교과서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리저리 찾아보더니 달랑 '사회생활' 한 권만 내주었고, 나중에 2학기가 되면 다 주겠다고 했다.

 

나는 봄부터 초가을까지 반년간 이 책 한 권만 가지고 다니며 공부했다.

지금 보니까 제목이나 표지화나 촌스럽지만 그때는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도시 아이들 셋 다 얼마나 세련되었는지, 나는 이런 아이들을 꿈속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다만 책 전체에 글자가 몇 자 되지 않아 그건 섭섭했다.

그 어렵기만 한 시절에 아이들 교과서를 저렇게 컬러로 인쇄해 준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도 생각해야 한다.

 

저 교과서는 미군정청 편수국의 '교수요목기'를 지나 1차 교육과정기의 교과서였다. 나는 나중에 교육부 사회과 김용만 편수관을 도와 5차 교육과정기의 교과서를 수정보완하는 작업을 했고, 6차 교육과정기에는 초등 사회과 편수관이 되었고, 7차 교육과정기에는 장학관 직급으로 초중고는 물론 특수학교, 유치원 교육과정, 교과서 업무 전체를 관장하는 교육과정정책과장이 되었다.

죽도록 일을 하다가 7차 교육과정과 그 교육과정에 따른 교과서가 2004년 1학기에 고등학교 3학년까지 적용되는 걸 보고 학교로 나갔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를 애틋해하는 분은 나를 교육부에 데리고 간 김용만 선배님이다. 그리고 나는 그분이 나를 애틋해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그분을 애틋해한다.

 

저 교과서가 내게 큰 영향을 미쳤나?

모르겠다.

한국교과서연구재단의 유순기 정보관장에게 저 교과서의 표지와 목차를 보고 싶다고 하자, 깔끔하게 스캔해서 보내주었다.

 

 

1. 우리 학교, 2. 인사, 3. 소풍, 4. 물건 아껴 쓰기, 5. 탈 없이 지내기, 6. 좋은 버릇, 나쁜 버릇.(도장은 국회도서관에서 찍은 것이다.)

 

 

5. 탈 없이 지내기?

그때만 해도 탈이 많이 났나? 무슨 탈이 그리 많이 났을까? 하기야 탈이야 지금도 많이 나지. 우리 모두 탈 없이 지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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