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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과정·교과서

윤문(潤文)이란 무엇인가

by 답설재 2026. 2. 7.

1990년대의 나는 교육부에서 교과서 편집에 미쳐서 지내던 시기였다. 이미 1980년대 중반에 시작되어 2004년 여름에 끝났으니 나에게는 실로 기구한 일이었다.

직접 원고를 쓰기도 했지만 주로 남이 쓴 원고를 학생들이 잘 읽을 수 있도록 '끝없이' 고치고 다듬고 확인하는 '끝없는' 작업이었다.

 

남이 써놓은 원고를 그렇게 고치고 다듬고 확인하는 그런 일은 창작인가, 그냥 심부름, 잡무(雜務) 정도인가?

나는 윤문(潤文)을 창작이라고 주장한다.

윤문이란 사전에서는 '글을 윤색함'이라고 풀이하는데 그렇기도 하지만(대개의 윤문은 그 수준일 것이다.) 나는 그 윤문에 나의 생애를 반영했다. 나의 모든 것을 걸었다. 나의 정신과 마음, 몸을 다 털어 넣었다.

그러니까 내가 윤문한 글은 내 글이기도 한 것이다.

 

윤문을 많이 한 원고는 필자가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로 고쳐지기도 한다.

내가 교육부 있을 때 장관으로 취임한 어느 교수는 그걸 못마땅해하면서도 참았었겠지. 취임하자마자 소문이 자자했다. 그 장관이 쓴 원고는 너무 많이 고쳐져서 본래의 원고가 사라지다시피 해서, 마침내 장관이 되어 와서 자존심을 살리려는 듯, 원수 갚으러 온 것처럼 그 일을 끄집어내더라는 것이었다.

그럼 원고를 '교육과정'(교육목표와 내용 등 조건)에 맞춰 수정하는 건 잘못된 일인가?

어쨌든 그때 오래 근무한 편수관들은 모조리 교육부를 떠나야 했다. 쫓겨났다.

 

당시의 편수관들이 한 일은 무엇이었나?

그냥 인쇄하면 대학교재 같을 수 있는 원고를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수준에 맞추어 윤문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윤문을 해도 나는 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단 한 번도 흡족한 적이 없었다.

서점에 널린 수많은 책들은 그렇게 재미있고 유익한데 어째서 교과서라고 이름 붙인 책들은 이렇게도 재미가 없고 어렵기만 할까? 그게 내 생각이었다.

 

지금은 편수국이 없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사실은 사라지길 잘했다. 그냥 그대로 내려왔다면 우리 교과서의 수준은 편수관의 수준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날고 기는' 편수관이 어디 그리 흔할 수 있나?

거의 없다! 그건 미쳐야 하는 일이고, 미치면 가정이나 가족보다 일, 정부, 나라, 우리, 학생, 국민 같은 걸 꿈에도 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나중에 고질병이 드러나고, 온갖 서러운 일을 겪게 되고, 외면받고, 후회막급일 것이 뻔해도 그렇게 해야 한다.

예전의 그 편수관 몇십 명이 하던 그 일을 지금은 수많은 출판사 직원들이 하고, 그렇게 해서 출품된 심사본 중에서 뽑힌 것이 교과서가 된다.

그렇게 해서 단일본(單一本)이던 국정 교과서가 거의 다 사라지고 다양한 검인정 교과서가 쓰이고 있다.

 

 

*

 

 

윤문이 창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나는 그 인물을 현실에서는 찾지 못했는데, 놀랍게도 소설 "표절"(장 자크 피슈테르, 최경란 옮김, 책세상 1994)에 그 인물이 나온다.

그 소설은 이미 품절되었으니 줄거리를 소개해 봤자 별 수 없을 것 같아서(나는 줄거리 소개를 아주 싫어한다) 그렇겠다 싶은 부분을 골라 두 군데 옮겨 썼다.

 

 

나는 새롭게 시작한 출판일에 금세 매료되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원고를 읽고 '다른 사람'들의 책을 출판하는 과정에서 질투심에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해야 했다는 점은 고백해야 하리라. 더구나 잘 쓴 작품을 만났을 때는 왠지 씁쓸한 느낌마저 드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었고 수정해 주었다. 그것은 한편으로 작가가 되지 못한 나 자신의 뼈아픈 고통을 가라앉히는 한 방편이기도 했다.(97)

 

단순히 출판하는 일뿐만이 아니라 그의 작품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도 했다. 그저 원본에 충실한 번역판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의 작품들이 어느 정도 나의 작품인 것처럼 여겨졌고, 그랬기 때문에 번역작업에 많은 공을 들였다. 나는 니콜라가 어떤 마법을 써서 내 속에서 솟아나고 있던 창작의 원천을 자기 것으로 가로챘다고 굳게 믿었다. 나는 나만이 가지고 있던 조화의 감성이 그의 작품 속에서 무능력한 그의 해석에 의해 변형되고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발견하곤 했다. 니콜라가 서투른 연주자였다면 나는 정통적인 작곡가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의 뒤를 쫓아다니며 그의 결점을 보완하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알렉산드리아에서 그의 조잡한 단편소설을 공개하기 전에 했던 것처럼 반복된 부분은 줄이고, 살짝 지나치기만 한 생각들에는 깊이를 주었으며, 진부한 표현들을 향기 있는 언어로 대치해 나갔다. 어찌 보면 나는 보잘것없는 하나의 작품을 새로 짜내고 그것에 보기 좋을 만큼의 형태를 만들어 새로 태어나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손에서 나온, 이국적 정취 속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모험의 이야기들은 그의 표현력만으로는 제대로 살아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기서는 항상 똑같은 인물들과 동 주앙식의 정복이라는 똑같은 환상밖에는 읽을 수 없었다.(104)

 

 

 

장 자크 피슈테르의 다른 소설 "편집된 죽음"은 "표절"과 연관된 스토리를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쑥스러워서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제 와서 뭘 감추겠나 싶다.

 

나는 2년제 초급대학(교육대학)을 나왔다. 나중에 야간 대학에 편입해서 배웠고, 대학원에 가서 더 배우긴 했다.

교육대학에서는 학예부장 지명을 받아서 교지도 창간했고, 그러면서 학보사 기자 생활도 했다. 윤문에 능력을 발휘한 것은 그때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교사가 되어 이곳저곳 교육청의 교육감, 교육장, 원장, 장학관, 장학사가 시키는 일은 주로 편집(윤문)이어서 그 일에 청춘을 소진해 버린 건 아주 정상적인 과정이었을 것이다.

매번 남모르는 시간 싸움이었고, 바보 같은 짓거리였다.

청춘을 소진해버린 것만도 아니고 빛날 수도 있는 나의 세월 전체를 소진해 버렸다.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고, 미안한 데도 없다. 이제 와서 미안해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죽고 나면 다 그만이고 끝나는 일이긴 하다.

 

윤문이 창작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저 소설 속 인물과 나, 두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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