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어려운 일이 참 많았는데 자신이 나서서 다 해결했다고 자랑질을 하고 다니는 사람은 많지만 그런다고 이제 와서 무슨 수가 나는 것도 아니다. 지나간 일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잊힌다. 다 잊힌다. 사람이나 일이나 다 잊힌다.
제7차 교육과정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극렬히 반대하고 나서자 차츰 전국적으로 반대 운동이 일어났고, 어? 어? 하는 사이에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마저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다.
심지어 한국교육개발원에서 그 교육과정(안)을 연구해서 교육부에 보고한 학자들조차 언론 인터뷰를 통해 문제점이 많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월급 받고 연구비 받으며 일해 놓고는 "연구가 잘못되었다"고 자백하는 건 마치 아이 낳아놓고는 스스로 잘못 낳았다고 비난하는 꼴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교육부 교육연구사로 '죽어라' 일만 하다가 1999년 9월 1일에 서울영신초등학교 교감 발령을 받아 현장으로 나갔는데 그해 10월 말에 교육부 담당 과장이 얼른 교육부로 다시 들어와야 한다는 연락을 했다. 들어와서 전교조의 반대투쟁을 막아야 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연구관을 시키겠다는 거냐?"고 물었더니 장학관 발령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연구관과 장학관은 직열은 같지만 교육부에서는 장학관에게만 보직을 주었다.
그래도 나는 당장은 싫다고 했다. 이미 교감으로 나왔으니 6개월은 근무해야 교감 경력 인정을 받을 수 있으므로 2000년 3월 1일에 다시 들어가겠다고 약속했고 그렇게 했다.
연구사였던 사람이 하루 식전에 장학관 발령을 받았는데도 아무도 이상하다고 하지 않았고 이상한 인사라고 신문에 나지도 않았다.
그날부터 나는 혼신을 다했다.
지금은 그 일들을 생각하기가 싫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살아가니까 다른 사람이 자신이 모든 일을 다했다고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래도 나는 이제 그런 일에는 눈을 돌리기 싫다.
이돈희 장관(2000.8.31~2001.1.28)이 취임하더니 사흘째 되는 날 나를 불렀다.
"김 장학관님! 나는 안에서 다 할 테니까 김 장학관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밖의 일을 맡으십시오. 김 장학관은 야전사령관입니다."
그분은 한국교육개발원 원장 시절에 그 교육과정안을 연구했는데, 장관으로 취임하기 전에는 그분 역시 제7차 교육과정은 문제점이 많다고 했었다. 이 장관은 그 일에 대해 학자로서는 어떠한 비판도 할 수 있지만 일단 행정을 맡았으니까 어려움이 있더라도 헤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장관의 그 해명도 격려로 받아들였고 "알겠습니다!" 했으므로 다시 학교로 나가는 날까지 또 혼신을 다했다.
이 장관은 교육부가 교육인적자원부(부총리 부서)로 바뀌면서 5개월만에 물러났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늘 이 장관이 붙여준 이름('야전사령관')을 잊지 않았다.
이 장관은 교육부를 떠나면서 나를 현관으로 불러서 차에 오르기 전 마음속에 있는 말을 딱 한 마디로 했지만 나는 지금까지도 그 말을 누구에게 해 본 적이 없다. 그것은 그와 나 사이에 '인간적으로만' 주고받을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 이 글의 의도한 바를 쓴다.
일은 일꾼과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다.
당시 김상권 차관(2000.1.27~2001.5.31)은 아주 온화한 행정가여서 내게도 항상 부드럽게 대했다.
또 김정기(金正基) 교원정책심의관은 전문직에게도 잘 대해주었고 '제7차교육과정지원장학협의단구성및운영등에관한규정'(훈령)을 만드는 데 큰 힘을 주었다.
이 규정은 내내 제7차 교육과정의 적용에 필요한 인적 자원과 물적 지원 확보의 근거가 되었다.
나는 이 말도 꼭 덧붙이고 싶다. 당시 전교조는 교육과정에 관한 한 사사건건 반대해서 교육부 직원 중에는 그들과 마주칠까봐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었고, 전교조 간부가 나타나면 반대쪽 문으로 달아나 숨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자주 만나야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 단체의 반대 투쟁으로 행정적인 지원을 받기가 쉬웠다고 생각한다.
일이란 그렇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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