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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마누라가 자꾸 기어오르네? 혹 당신이 기어오르는 건 아니야?

by 답설재 2025. 12. 23.

이 아파트에 이사 온 지 십오 년 째다.

이래저래 안면이 생겨 눈인사도 하고 한두 마디 안부도 주고받는다. 나처럼 부부간에 살아가는 사람들이거나 젊은이들이다.

미안하지만 혼자 사는 사람은 누군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우리 또래 경우는 부부가 함께하고 있는 행운아들인데, 희한한 건 그 행운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고, 재미있는 건 아마도 그런(알아채지 못하는) 늙은이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샤워장에서 자주 만나는 노인 중 하나가 악수를 청하며 잘 지내보자고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6·25 전쟁 이야기가 나와서 그가 나보다 세 살 더 먹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추석 때는, 자신은 딸 둘을 두었는데 그 딸들이 바쁘다면서 다녀간 지 너무 오래되어 이젠 얼굴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었다.

하기야 보청기를 집에 두고 거기 와서 찾기도 하고, 라커룸에서는 76번에 옷을 넣어두고는 일쑤 자신이 '애용하는 67번'이 빈통이라며 난처해하기도 하는 사람이니 딸들 얼굴을 잊었다는 그 말을 믿을 수도 없지만 참말일 것 같기도 하다.

 

어제는 만면에 미소를 지은 채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었는데 헤어질 때 하는 소리가 더 재미있었다.

"마누라가 자꾸 기어오르네?"

나는 입을 벌리고 웃었다. 웃지 어떻게 하겠는가?

기어오르지 그럼 어떻게 하겠는가? 아직도 고분고분해야 할 무슨 이유가 있을까?

그렇게 기어오르면서라도 살아주는 걸 고맙게 여겨야지 막상 헤어지자고 하면 그때는 어떻게 하겠는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에는 그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어제 그와 마주하고 있는 그 시간에는 단 한 가지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혹 당신이 기어오르는 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