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아파트에서 우리 동네(행정동)를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산기슭 마을, 저 아래 중심지, 중심지의 변두리에 해당하는 중간 마을로 나눌 수 있다.
중요한 볼일은 중심지로 가야 하지만 그만그만한 일은 중간 마을에서도 해결할 수 있고, 우리 마을에는 겨우 세탁소와 미장원, 24시, 카페, 치과, 맛이 별로인 통닭집, 분식집, 교회와 절 같은 것들뿐이다.
도서관은 있다! 이건 대서특필되어도 좋을 것 같다.
지난 금요일에는 차를 가지고 좀 먼 길을 가야 할 일이 있었다.
뭘 좀 준비해 놓고 가야 했는데 아내는 집 앞 점포를 다녀오라고 했지만, 그러기가 싫어서 중간 마을로 내려가서 볼일을 보고 올라오게 되었다.
이 동네에 산지 10년이 훨씬 넘었으니 골목길, 지름길을 대충 다 알고 있어서 걸음을 재촉하며 돌아오는데 이런 일이 있나, 지름길 저 앞 골목에서 날씬하고 예쁜 여자 두 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몸에 해롭긴 하지만(누가 그걸 모르나), 그리고 이런 말 털어놓고 하기가 좀 그렇긴 하지만 그 모습은 썩 괜찮아 보였다.
서둘러 한 대 피우고 근무에 들어가야 할 시각이었다. 담배연기를 내뿜는 모습만 봐도 그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하지?'
서슴지 않고 발길을 돌렸다. 엉거주춤 서 있으면 시간만 가고, 그 여자들 눈에 띄면 상황만 난처해지는 꼴이 될 것이었다. "어이, 영감탱이. 이리 와 봐!" 그러진 않겠지만.
결국 지름길을 택한 것이 시간상 오히려 손해가 된 것이다.
일이란 일쑤 이렇게 된다.
돌아오며 객쩍은 생각을 좀 해보았다.
가던 길을 계속 갔으면 어떻게 됐을까?
'이 인간 봐. 우리가 담배 피우는 곳을 멋대로, 겁도 없이 막 지나가네?'
고개를 푹 숙이고 지나갈 이유는 없고, 그녀들 얼굴을 좀 보며 지나왔을까?
'뭐 이런 엉큼한 노인네가 다 있나! 우리를 빤히 쳐다보며 지나가네?'
그렇다고 그녀들이 나를 의식해서 어디로 몸을 피할 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난처한 건 나일 것이 분명했다.
혹 이럴 수는 있었을 것이다. 이건 내가 건강해서 지금까지도 담배를 필 경우니까 언감생심이긴 하다.
"아가씨, 그 불 좀 빌립시다."
이건 왜 그런가 하면 그녀들 옆에 서서 내가 내 라이터로 담뱃불을 붙이면 상황이 우스워지기 때문이다.
그 상황을 지켜볼 그녀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이런 또라이, 하필 우리 곁에서 피워야 하나!'
"그 불 좀 빌립시다" 하면 그녀들도 자연스럽게 계속해서 담배를 피울 것이고, 나는 나대로 가던 길을 되돌아서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혹 어디 근무하는지 물어보고 기회 봐서 찾아가 또 함께 담배를 나눠 피는 우정을 나눌 수도 있었지 싶기도 하다.
백해무익이니 뭐니 하지만 담배를 필 때 나는 건강했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멀쩡했었다.
'내가 만난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화장장, 그 일은 나의 일은 아니다 (5) | 2025.12.24 |
|---|---|
| 마누라가 자꾸 기어오르네? 혹 당신이 기어오르는 건 아니야? (14) | 2025.12.23 |
| 고요, 오리무중(五里霧中) (0) | 2025.12.20 |
| 저 섬찟한 휴머노이드 (2) | 2025.12.16 |
| 괜찮다, 1,000원짜리여도 괜찮다 (8) | 2025.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