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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화장장, 그 일은 나의 일은 아니다

by 답설재 2025. 12. 24.

 

 

 

김훈 산문 《허송세월》은 지난해 11월에 읽었다.

다시 한 해가 가고 있다.

연말연시 인사들을 하는데, 나는 어젯밤 그 책의 화장장 얘기가 생각났고 제때 잠들지 못해서 불을 껐다 켰다 하다가 겨우 잠들었다.

태연한 척해도 한 명 한 명 사라져 가는 지인들이 나에게 "그럼 좀 있다 와" 하고 떠나서 나를 기다릴 것 같은 느낌일 때가 있다.

태연한 척...

내 차례는, 아직 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주변의 부음을 들을 때 고인은 재수가 없어 죽었고 자신의 재수는 그리 나쁘지 않다는 듯한 분위기를 보이기도 한다. 이런 얘기는 좀 뭣하지만 다소간 흥겨운 느낌으로 '떠들썩' 이야기를 나눈다.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벗들한테서 소식이 오는데, 죽었다는 소식이다. 살아 있다는 소식은 오지 않으니까, 소식이 없으면 살아 있는 것이다. 지난달에도 형뻘 되는 벗이 죽어서 장사를 치르느라고 화장장에 갔었다.

화장장 정문에서부터 영구차와 버스들이 밀려 있었다.

관이 전기 화로 속으로 내려가면 고인의 이름 밑에 '소각 중'이라는 문자등이 켜지고, 40분쯤 지나니까 '소각 완료', 또 10분쯤 지나니까 '냉각 중'이라는 글자에 불이 켜졌다. 10년쯤 전에는 소각에서 냉각까지 100분 정도 걸렸는데, 이제는 50분으로 줄었다고 화장장 홍보전단에 적혀 있었다. 기술이 크게 진보했고, 죽음을 관리하는 의전 절차도 세련되어졌다.

'냉각 완료'되면 흰 뼛가루가 줄줄이 컨베이어벨트에 실려서 나오는데, 성인 한 사람분이 한 되 반 정도였다. 직원이 뼛가루를 봉투에 담아서 유족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유족들은 미리 준비한 항아리에 뼛가루를 담아서 목에 걸고 돌아갔다. 원통하게 비명횡사한 경우가 아니면 요즘에는 유족들도 별로 울지 않는다. 부모를 따라서 화장장에 온 청소년들은 대기실에 모여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제 입으로 "우리는 호상好喪입니다"라며 문상객을 맞는 상주도 있었다.

그날 세 살 난 아이가 소각되었다. 종이로 만든 작은 관이 내려갈 때, 젊은 엄마는 돌아서서 울었다. 아기의 뼛가루는 서너 홉쯤 되었을 터이다.

('재의 가벼움' 49~50)

 

 

이 부분을 처음 읽을 때는, 아직 화장장에 가본 적 없는 것처럼 '이렇게 가는 것이구나' 하며 읽었고, 읽어 놓고도 또 읽었다. 마치 암기라도 해두려는 듯.

이 글을 쓰느라고 나는 또 읽었다.

이젠 읽지 않아도 될지 모르겠다.

 

저 사진의 저 자리에 함께 앉아 있던 이 중 1년 전에 떠난 이가 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저기에서 나 만날 때 '재수 없다!' 생각하고 다른 자리에 앉자고 할 이도 있을 것 같다.

그럼 그 사람 말을 들어야지.

그렇게 하며 나는 더 생각하겠지. 생각은 자꾸 하겠지만, 그곳에 가면 내 뼈와 살과 피가 불타는 것이겠지만(적으나마 내 애환까지도), 사실은 그때 그 일은 나의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