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나의 불친 정바름 님 소개로 읽었다.
정바름 님은 사회학 쪽에 관심이 깊은 동급생 친구 지로 씨 소개로 "재미있게 읽었어요!"라고 소개해 주었다.
재미있고 쉬운 부분이 많아서 즐겁게 읽었다. 때로는 고등학교 혹은 대학 교양과목 교과서 읽는 느낌일 때도 있었지만 그런 부분이 많지는 않았다.
여성의 자리를 이야기한 '오염의 메타포'가 특히 인상 깊었다.
아래는 공부한 흔적이다.
다음에 또 읽으면 이 발췌가 달라질 것은 당연하다.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지성사 2015
프롤로그: 그림자를 판 사나이
1장 사람의 개념
태아
현대 사회에서 출산이 아무런 의례적 장치 없이 순수하게 의료적인 합리성에 따라 진행되는 까닭에, 사람들은 태아가 모체의 바깥으로 나오는 순간 어떤 상징적인 경계선을 통과한다는 사실을 놓치곤 한다.
노예
노예는 상징적인 공간으로서의 사회 바깥에 있다. 그래서 비록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사회 안에 들어와 있더라도 노예는 다른 사람들의 눈앞에 동등한 사람으로서 현상하지 않는다.
군인
"아직 말이 끄는 전차를 타고 학교에 다녔던 세대가 벌판에, 구름 외에는 변치 않는 게 하나도 없는 풍경 속에 던져져 있었다. 독가스가 폭발하고 죽음이 흐르는 그곳에서 그들은 왜소하고 부서지기 쉬운 인간이 몸뚱이일 뿐이었다."(발터 벤야민)
사형수
그는 사람이 아니라 단순한 생명에 불과하기에, 그의 고통은 어떤 상징적인 가치도 갖지 않으며, 그에 대한 마지막 배려 역시 '동물 복지'를 논할 때와 유사하게,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는 문제에 집중된다.
2장 성원권과 인정투쟁
주인과 노예
인정투쟁이 지향하는 타자는 적이 아니라 우리이다. 즉 인정투쟁은 성원권투쟁이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의 논의는 인정투쟁을 인간의 본질이나 실존적 조건과 관련시키는 접근들을 모두 배제한다. 인정투쟁이 성원권투쟁이라면, 인정투쟁의 양상은 한 사회에서 성원권이 분배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외국인의 문제
국제분업은 이 세계의 거주민들을 '유기적인 연대' 속으로 밀어 넣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외국인이라는 범주에 집착하면서, 자기들이 하나의 사회 속에 있음을 부인한다.
오염의 메타포
왜 어떤 범주의 사람들─흑인, 재일조선인, 불가촉천민 등등─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럽다고 여겨지는가?
『순수와 위험』에서 더글러스는 더러움을 자리place에 대한 관념과 연결시켰다. 더럽다는 것은 제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
여성은 장소를 더럽히는 존재로서만 사회 안에 현상할 수 있다. '깨끗한' 여성이란 보이지 않는 여성이다. (...)
'더럽다'는 말은 죽일 수도 길들일 수도 없는 타자에 대한 미움과 두려움을 담고 있다. 그 말은 상대방의 존재를 부정하는 동시에, 그러한 부정이 굳이 필요했음을 인정함으로써 그의 주체성을 역설적으로 인정한다. 그래서 어떤 페미니스트들은 '더러운 년'이라는 욕을 들어도 전혀 위축되지 않으며, 오히려 이런 말을 듣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3장 사람의 연기/수행
사람다움은 우리가 원래 가지고 태어났거나(그래서 잃지 않으려고 애써야 하거나) 사회화를 통해 획득해야 하는 본질이 아니다. 그보다 사람다움은 우리에게 있다고 여겨지며, 우리 스스로 가지고 있는 체하는 어떤 것, 서로가 서로의 연극을 믿어줌으로써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어떤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본질을 갖지 않는 현상이다.
가면과 얼굴
"인격은 신성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범하지도 그 둘레를 침범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타인과의 교류는 지고의 행복이다." (...)
현대 사회는 구조의 면에서 불평등한 개인들이 상호작용의 질서 안에서는 평등하다고 가정한다. 즉 지위의 높고 낮음이나 자본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현대 사회의 구성원들은 사람으로서 평등하다. 상호작용 의례는 바로 이 점을 확인한다.
명예와 존엄
모욕은 명예에 대한 부정이자 자격에 대한 의심을 뜻한다. (...)
모욕은 존엄을 공격할 뿐 아니라, 실제로 그것을 무너뜨린다. (...)
한국 사회는 여전히 신분주의와 싸워야 한다. (...) 관리자가 노동자에게 나이에 관계없이 반말을 하는 것이 좋은 예이다. 사실 1퍼센트를 위한 사회에서 사람은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는 대접받기 힘들다.
4장 모욕의 의미
인격에 대한 의례
개인은 (사회화를 거쳐서) 일단 사람이 되었다고 해도, 남의 도움 없이 계속 사람으로 살아갈 수 없다. 사회생활의 모든 순간에 그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람 대접을 받음으로써 매번 사람다운 모습을 획득하는 것이다.
배제와 낙인
정상인은 낙인을 포용하는 듯한 몸짓을 한다. (...) 미디어에 종종 나오는, 낙인자를 대상으로 한 사회 통합 의례 ─고아들에게 키스하는 연예인, 장애인을 목욕시키는 정치인 등등 ─가 이를 잘 보여준다. (...) 하지만 정상인들이 이렇게 낙인자들의 몸을 함부로 만질 수 있는 대상으로 취급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관계의 불평등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신분과 모욕
신분이 낮은 사람일수록 그에게 저질러질 수 있는 무례함의 한도가 커진다. (...)
모욕이 의례적 질서의 일부를 이루고 있을 때, 즉 의례 코드 자체가 비대칭성을 띨 때(한쪽은 다른 쪽을 모욕할 수 있지만, 그 역은 불가능한 경우) 이는 그 사회에 신분 차별이 존재한다는 표시로 해석될 수 있다.
사회의 발견
오지 한가운데서 원주민을 만난 자원봉사자는 자기가 손을 내밀면 상대방도 손을 내미는 것을 발견하고, 자신이 '인류 사회'의 일원임을 새삼 깨닫는다. (...)
남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사회적으로도 고립된다. (...)
사회의 발견은 신분 질서의 해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람이 되어라'
학교에 다니지 못한 사람들은 여전히 '사람 노릇을 하지 못하는' 존재로 남게 되었다. (...)
생산직에게 나이와 관계없이 반말을 쓰지만, 생산직은 사무직에게 높임말을 쓴다. (...)
이 애니메이션(박재동 「사람이 되어라」)에 나오는 아이들은 모두 유인원의 형상을 하고 있다. 오직 교사만이 사람이다.
굴욕에 대하여
신자유주의적 노동 통제는 신분적 모욕을 새로운 형태의, 더욱 미묘하고 일반화된 모욕으로 대체하였다.(...)
미디어는 날마다 천국을 보여주면서, 천국에 들어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가르친다.(...)
신자유주의적 주체들은 ─'노바디'이건 '썸바디'이건 ─끊임없는 굴욕과 강등의 위협에 시달린다.(...)
신자유주의의 모순은 상호작용 질서의 차원에서 (즉 상징적으로)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주장하면서, 구조의 차원에서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단을 빼앗는다는 것이다.(...)
평범한 노동자로서 우리는 감히 대기업 총수의 이름을 부르지 못한다. (...) 트위트에 컵라면 시식 후기를 올려서 우리가 라면 소비자로서 평등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재벌 2세의 자상함이 잠시 그런 환상을 불러올 수도 있겠다.(...)
신자유주의 ─그 핵심은 자본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고, 노동에게 극도의 순응을 요구하는 것이다.
5장 우정의 조건
순수한 우정과 순수한 선물
기독교적 사랑은 (...) 증여를 통해 자아의 결핍을 메우려는 욕망이다.
순수한 우정의 관념은 경제적으로 자율적인 개인들로 이루어진 사회를 가정한다.
얼굴을 유지하는 데는 돈이 든다. 사회라는 연극 무대에서 성공적으로 배역을 수행하려면, 적절한 의상과 소품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부장제를 보완하는 국가
아내가 아무리 비싼 옷을 사도 나무라지 않는 관대한 남편이라도, 아내가 자기 몰래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었다는 것을 알면 화낼 수 있다.
빈민의 주된 용도는, 애완동물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쓰다듬는 사람의 인간다움을 돋보이게 하는 데 있다.
가부장제는 또한 가족 구성원들을 경제적 이데올로기로 엮어 놓음으로써, 그들 사이에 순수한 감정이 흐르는 것을 막는다.
'관계적 가족'의 구조는 우정의 구조와 비슷하다.
증여와 환대
아무리 욕심 많은 아이라도 상대방이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으면 서로 초대할 수도, 선물을 주고받을 수도 없다는 걸 알기에. 기꺼이 살림을 나누어준다.
환대란 주는 힘을 주는 것이며, 받는 사람을 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공동체에 관한 두 가지 상상
우정의 조건은 절대적 환대이다. (...) 절대적 환대는 자아와 타자 사이의 경계를 완전히 허무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환대는 공공성을 창출하는 것이다.
6장 절대적 환대
신원을 묻지 않는 환대
보답을 요구하지 않는 환대
유교사회의 구성원들은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있다는 점에서 노예와 비슷하다. 물론 그들과 노예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들이 존재한다. 노예는 사람이 아니지만, 그들은 사람이다.
노예는 사람이 아니기에 빚을 질 수 없다. 그는 어떤 빚도 없이 주인과의 비관계 속에, 순수한 적대 속에 있을 뿐이다.
복수하지 않는 환대
법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환대가 선행되어야 한다. 환대란 타자를 도덕적 공동체로 초대하는 행위이다. 환대에 의하여 타자는 비로소 도덕적인 것 안으로 들어오며, 도덕적인 언어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된다. 사회를 만드는 것은 규범이나 제도가 아니라 바로 환대이다.
환대는 전쟁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영구평화야말로 절대적 환대의 조건이다.
7장 신성한 것
죽은 자의 자리
싱어는 무뇌아나 대뇌피질이 죽은 사람은 사람이 아니므로 장기를 적출해도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뇌사자의 몸에서 장기를 적출할 수 있다는 것이 곧 뇌사자는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죽은 뒤에도 사회 안에 여전히 그 사람의 자리가 남아 있다고 믿는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 사이에 의례적인 관계가 지속된다는 것은 죽은 사람이 여전히 사회의 구성원임을 뜻한다.
사람이라는 것은 사회 안에 자리가 있다는 것이며, 신성하다는 것은 이 자리에 손댈 수 없다는 뜻이다.
서바이벌 로터리
이제 두 사람이 남았다.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가위바위보를 한다.
C: 내가 졌군. 하지만 너는 나를 잡아먹을 수 없을걸.
D: 왜?
C: 내가 너보다 힘이 세니까.
D: 이건 불공평해. 진 사람이 잡아먹히기로 약속했잖아.
C: 내가 공정하게 행동하면 너는 나를 잡아먹을 거잖아.
D: 두 명이 죽는 것보다 한 명이 죽는 게 낫잖아? 우리를 위해서 네가 희생해야 해.
C: 내가 죽으면 너만 남는데, 우리라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공리주의의 의미와 허상: "두 명이 죽는 것보다 한 명이 죽는 게 낫잖아?" "우리라니?")
두 사람의 생명은 한 사람의 생명보다 두 배의 가치가 있다고 말하면서, 공리주의는 사람의 생명을 특수한 성격의 재산처럼 취급한다.
부록 장소에 대한 두 개의 메모
장소/자리의 의미
"지구는 둥글고 그 표면적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칸트)
실로, 세계화와 더불어 지구는 둥글어졌다. 무한한 공간에 대한 상상은 더 이상 지탱될 수 없는 것이다.
둥글어지고 작아지는 지구 위에서 자리를 갖는 일, 또는 자리를 지키는 일은 지난하기만 하다.
여성과 장소/자리
여성에 대한 사회적 환대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여성은 어디서나 모욕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멋진 옷과 가방도, 자격증도, 명패와 직함도 보호막이 되어주지 못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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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에 대하여
'자살은 절망한 사람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이고, 부조리한 현실에 맞서서 자신의 존엄과 자유를 주장하는 최후의 수단이라는 시각이 더 일반적'이라고 하며 다음과 같은 각주를 붙인 것에는 의구심을 가졌다.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는 이러한 시각을 대표한다. 하지만 자살과 자유를 연관시키는 전통은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예는 죽음과 자유를 맞바꾼 자라는 관념은 자살이 자유인임을 증명하는 수단이라는 생각을 함축한다.
나는 그 책을 세 번 읽었는데 알베르 카뮈는 자살을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으로 그 에세이를 쓴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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