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G. 제발트가 소설 《이민자들》에서 묘사한 정원은 황폐화된 정원이다.
그 정원도 한때는 주인의 손길에 따라 아름답게 가꾸어지다가 마침내 그 주인은 늙어가고 세월을 따라 정원도 늙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오래도록 그 빛을 바꾸어가며 살아남는다. 정원 주인에게 보답하려는 듯 늙어가면서도 그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쓰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그 정원을 찾아가 보고 싶었다. 개암 열매가 떨어진 길을 걸어 작지만 아름답고 맛 좋은 사과도 구경하고 싶었다. 언젠가 먼 다른 나라에 가 살고 있는 내 딸이 그런 사과 몇 알을 가져다준 적이 있다.
여기 그 정원에 대한 묘사와 함께 책에 실려 있는 사진 두 장도 복사해 보았다.

잔디밭 남쪽 가장자리의 덤불 사이에는 통로가 하나 나 있었는데, 그 뒤로 개암나무가 늘어선 길이 있었다. 우리 머리 위에서 서로 이어져 지붕을 만들고 있는 양쪽 길가의 나뭇가지들 사이로 회색 다람쥐들이 돌아다녔다. 땅바닥은 갈라진 개암들로 촘촘히 뒤덮여 있었고, 수백 송이의 콜키룸(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들이 바스락거리는 마른 나뭇잎들 사이로 드문드문 스며드는 햇빛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개암나무 길은 테니스장이 있는 곳에서 끝났다. 테니스장 옆은 흰색 벽돌담으로 막혀 있었다. 'Tennis used to be my great passion(한창 테니스에 열중한 적이 있었지요),'라고 쎌윈 박사는 말했다. 'But now the court has fallen into disrepair, like so muchelse around here(하지만 여기 다른 곳들도 대개 그렇듯이 이젠 테니스장도 황폐해졌습니다).' 그는 상당히 파손된 빅토리아 양식의 온실과 멋대로 자라난 나무울타리를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몇 년 동안 돌보지 않았더니 채마밭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부담을 너무 많이 줬던 자연도 그냥 저렇게 방치해 두었더니 신음소리를 내며 점점 함몰되는 중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많은 식솔들이 먹을 음식을 소출할 목적으로 이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으며, 한때는 노력한 기술로 재배한 과일과 야채를 일 년 내내 수확할 수 있었다고 했다. 요즘은 거의 관리를 해주지 못하는데도 쎌윈 박사 자신이 먹을 것쯤은 거뜬히 채우고도 남을 만큼 여전히 넉넉하게 길러내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하긴 그가 먹는 양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형편이었다. 한때는 모범적으로 관리되던 정원이 황폐해져서 좋은 점도 있다고 쎌윈 박사가 말했다. 야생을 되찾은 정원에서 저절로 자라나는 것이나 자신이 여기저기 대충 씨를 뿌리고 심어 놓은 것이 빼어난 맛을 낸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어깨 높이까지 왕성하게 자란 아스파라거스들이 모여 있는 채소밭과 줄지어 선 커다란 아티초크 덤불 사이를 지나 사과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사과나무에는 주황색 열매들이 수없이 달려 있었다. 실로 내가 그때까지 맛본 그 어떤 사과보다 맛이 좋았는데, 쎌윈 박사는 그 사과 여남은 개를 대황잎으로 싸서 클라라에게 선물했다. 그러면서 그 사과 종은 뷰티 오브 배스(목욕의 아름다움)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데, 아주 그럴듯한 이름이라고 했다.
W. G. 제발트 《이민자들》(이재영 옮김, 창비 2008, 13~1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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