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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미셸 투르니에 에세이 《생각의 거울》

by 답설재 2026. 1. 5.

 

 

 

미셸 투르니에 에세이 《생각의 거울》

김정란 옮김, 북라인 2003

 

 

 

시와 산문은 어떻게 다른지 간단명료하게 설명한다. 그 글을 옮겨 써도 좋지만 그렇게 하지 않겠다. 뭐라고 토를 다는 사람이 몇 사람 있어서 귀찮을 것 같다. 내가 왜 그런 짓을 하나. 자존심 상할 때도 있고, 묘욕감을 느낄 때도 있다. 남에게 알려줘 봤자 무슨 수가 나는 것도 아니다.

 

남자는 뭐고 여자는 뭐냐, 미셸 투르니에는 이렇게 설명했다.

 

 

성경 말씀을 믿는다면, 신은 천지창조 여섯째 날에 인간을 창조하였다. 그는 인간을 여자이며 동시에 남자인, 즉 양성 인간으로 창조하였다. 그 인간은 스스로 번식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그때 땅은 사막일 뿐이었다. 그래서 인간의 형상은 흙먼지로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 후 신은 낙원을 만들고, 인간을 정착시켜 그곳을 가꾸고 지키도록 하였다. 그때 그는 인간에게 고독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모든 동물들─포유동물과 새들에게 자기 앞에 와서 줄을 서라고 지시하였다. 인간으로 하여금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고 동반자를 찾게 하기 위해서였다. 인간은 그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지만, 동반자를 찾지는 못하였다. 그러자 신은 인간이 깊은 잠에 들게 한 다음, 그에게서 모든 여성의 기관들을 끄집어냈다. 그 기관들을 가지고 그는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여 여자라고 불렀다. 이브가 태어난 것이다.

남성과 여성이란 두 성에 대한 심리학은 이러한 기원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우선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양성구유적 존재가 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사랑이 주는 고독을 잘 견디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성게는 분명히 스스로 번식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불편한 몸짓으로 상대방과 짝을 짓는다.

여성적 '부분들'의 제거는 남자에게 잘 아물지 않는 정신적 상처를 남겨 놓았다. 많은 남자들이 모성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부성이 주는 빈약한 만족으로는 가라앉지 않는다.

여자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우선 여자들이 낙원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남자가 사막의 먼지로 만들어진 데 반해, 여자는 낙원의 꽃들과 잎사귀가 통통한 식물 아래에서 태어났다. 여성적 속성의 많은 특징들이 이러한 사실에서 유래한다. 또한 여자는 자신의 성기관으로 만들어졌다. 여자는 남자가 남성성에 종속되어 있는 것보다도 더 실제적으로 여성성에 종속되어 있다. 스콜라 철학자들은 이러한 특성을 "모든 여자들은 자신의 자궁 안에 있다"는 경구로 표현하였다.

자연은 남자에게 여자보다 더 유리한 점을 몇 가지 주었는데, 남자는 여자를 예속시키기 위해서 그 이점들을 십분 활용하였다. 칼 마르크스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하여, 여성은 남성의 프롤레타리아라고 하였다. 그러나 시대가 지나가면서 여자는 육체적인 힘과 경제적 독립을 쟁취하게 되었다. 모성의 부담은 점점 더 가벼워지고 있다. 어쩌면 순수한 모계 사회가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전망도 가능하다. 그런 사회가 되면 남자들은 여자들의 쾌락에나 이용되는 장난감 신세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른다.

여성이 주도권을 장악하는 이러한 사회는 예상보다 더 빨리 나타날 수도 있다. 여성 자신이 여성의 숫자를 줄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성들이 태내에 있는 아이의 성별을 확실히 알게 되면서 인공 유산을 선택할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리고 여성들이 유산을 선택할 때에는 거의 언제나 태아가 여자 아이인 경우이다. 벌써 인도의 신세대에서는 심각할 정도의 남녀 성비 불균형이 생겨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여자들이 귀해지는 현상이 나타나서 여아 살해로부터 살아남은 여자들의 가치가 엄청나게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종래는 인간 종이 사라지는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인간 종의 영속을 보장해 주는 것은 남자들이 아니라 여자들이기 때문이다.

 

 

여자들처럼 남자들도 여자들이다.    그루쇼 마르크스

 

 

'사랑과 우정'도 설명해 주고 돈 주앙과 카사노바, 웃음과 눈물, 어린이와 사춘기 소년, 내혼과 외혼, 건강과 병, 황소와 말, 고양이와 개, 사냥과 낚시, 목욕과 샤워…… 여러 가지를 신선하게 재미있게 때로는 좀 어렵게 설명한다.

 

114개의 개념 설명이 들어 있는 '사전(事典)'이라고 해도 되겠는데, 나는 그동안 서장에 꽂힌 이 책 제목을 볼 때마다 '생각의 거울이라, 또 무슨 공부를 하라는 책인가?' 했고, 자칫하면 외면하고 말 뻔했다.

'내게 이런 책도 있구나!'

수천 권씩 버릴 때 실려 나갔더라면 나는 멍청이가 되는 건데……

아찔하다.

사실은 난 멍청이다. 이 책을 두 번째 읽으면서 언젠가 읽은 걸 까맣게 잊고 '내가 이 책 사다 놓고 20여 년 만에 읽는구나' 했다.

지금은 '품절'인 책이다. 알라딘 같은 데는 있겠지?

이 책을 보면, 절판되는 건 책이 '좋고 나쁘고'로써 결정되는 건 절대로 아니다.

 

이 책 제목이 세 번째란다.

맨 처음에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110가지 개념》이었고, 그다음에는 《소크라테스와 헤르만 헤세의 점심》이었고, 마지막으로 《생각의 거울》이 되었는데 이게 원제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