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병영 전 교육부장관겸부총리는 강원도 고성에 집 짓고 농사를 지으며 산다.
부인이 몸이 불편하기도 하고, 겨울에는 주로 집필을 하기 때문에 올겨울에는 연희동에서 지낸다.
그분 블로그 "현강재"의 포토 갤러리에서 위의 사진에 붙인 다음과 같은 설명을 보았다.
오랜만에 연희동 뒷산에 올랐다. 옛날에 내가 자주 다니던 길목에 <철학자의 길>이라는 새 팻말이 생겼다.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아무도 없는 길에서 홀로 철학자 행세를 했다.
안 전 부총리는 블로그에 글을 자주 쓰지도 않는데 나는 자주 찾아가 본다. 혹 내가 놓친 글은 없을까 싶어서다.
일전에 전화했더니 내년에는 꼭 얼굴 좀 보자고 했다.
'어떻게 하나? 그분은 내가 머리는 다 쉬었지만 그 머리는 젊은 시절에 이미 그렇게 되어서 80을 넘긴 줄 모를 수도 있다. 늘 그 시절 그 김 장학관으로 기억하겠지. 내가 고성까지 운전해 가는 건 불가능하다. 비행기를 타고 가서 택시로 갈아탈까?......'
#
1980년대에 잠깐 근무한 D시 S초등학교 정원(庭園)에 난 길의 이름을 지었던 일이 떠오른다.
이태 동안은 담임을 맡지 않고 일만 하다가 3년째에 1학년 담임을 맡았다.
나는 아침자습을 내지 않았다. '1학년 애들에게 자습은 무슨...'
교장 생각은 달랐다.
아침부터 우리 반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노는 운동장을 내다보며 걱정을 했지만 나는 내 고집을 꺾지 않았다.
우리 반 애들과 나는 정말 친하게 지냈다.
나는 그 녀석들을 쥐어박은 적이 없다.
교실이 벌집 쑤셔놓은 것 같아도 나는 모른 체했다. '모른 체'는 아니고 '애들은 본래 떠들고 노는 걸 좋아해. 그게 전공이야' 생각했다.
녀석들이 싸우면 둘이서 손을 잡고 온갖 나무들이 우거진 정원을 거닐다 교실로 들어오라고 했는데 녀석들은 참 신통하게도 씩씩 웃으며 돌아왔다. 말싸움을 심하게 한 경우에는 손만 잡고 다녀오되 말은 한마디도 해선 안 된다고 했는데, 그럴 때 그것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교실로 돌아왔다.
그 숲길은 교문 쪽에서 연못 쪽까지의 나지막한 정원에 난 길이었는데 그 좋은 길을 아이들은 잘 찾지 않았다.
나는 그 정원의 길을 "사색의 길"이라고 이름 붙이고 녀석들에게 '사색'이 뭔지 설명해 주었는데 녀석들이 그 말을 알아들었겠나? 그냥 그런가 보다 했겠지. 우리 담임은 우리 좋으라고 저렇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더러 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하고 넘어갔겠지?
획기적인 일이 있었다.
초여름쯤 교장이 아예 "사색의 길"이란 팻말을 멋있게 제작해서 세워주었다.
교장은 1학년 학부모 연수회 때 학교장 특강을 내게 대신하라고 했다.
그 학교는 학부모 연수회에 결석하는 어머니가 단 한 명도 없는 특별한 학교였다.
나는 사양하는 척하다가 신이 나서 강의를 했는데 1학년 국어책에 나오는 "토끼와 거북이"를 주제로 했고,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 안에 '노력'이라고 써넣으면 정답이던 그 시절에 우리 반 아이들에게 물어보며 칠판에 적어 봤더니 그 대답이 백 가지도 넘더라는 실화(實話)를 들려주었다.
#
이 학교 수업을 스케치한 최근 기사를 봤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입학한다... '경쟁률 22대 1' 국립초 수업 보니」
☞ https://v.daum.net/v/20251214050307210
'내가 만난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괜찮다, 1,000원짜리여도 괜찮다 (8) | 2025.12.15 |
|---|---|
| 당신 뭐냐? 수상하다! 노인이지 싶다! (4) | 2025.12.12 |
| 크리스마스 캐럴 (8) | 2025.12.08 |
| 우리가 만들고 가는 傳說 (7) | 2025.12.06 |
| 파란 하늘 고맙습니다 (12) | 2025.1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