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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클레어 키건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

by 답설재 2025. 10. 20.

 

 

 

 

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Small Things Like These

홍한별 옮김, 다산북스 2024

 

 

 

석탄·목재상 빌 펄롱은 아내 아일린, 다섯 명의 딸들(캐슬린, 조앤, 실라, 그레이스, 로제타)과 행복하게 살고 있다.

어머니가 미시즈 윌슨의 저택에서 일하며 자신을 낳아 키운 일, 미시즈 윌슨의 인품과 가르침을 잊지 않고 있다. 아버지가 누군지 궁금하지만,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

부유하진 않지만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에게는 따뜻하게 대한다.

 

지금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다.

 

 

트리 장식을 마치고 플러그를 꽂으니 색전구에 불이 들어왔고, 그레이스는 아코디언을 꺼내 「징글벨」을 연주하려고 했다. 실라는 텔레비전을 켜고 소파에 누워 「이 땅의 크고 작은 모든 생명」이라는 드라마를 봤다. 펄롱은 아일린이 이제 좀 앉아 쉬었으면 했지만 아일린은 설거지를 마치자마자 밀가루와 델프트볼을 꺼내더니 민스파이를 만들고 케이크에 아이싱을 해야 한다고 했다. 캐슬린이 파이 반죽을 만들어 밀대로 평평하게 폈다. 그러자 로제타가 뒤집은 컵으로 반죽을 찍어 동그랗게 잘라냈고 아일린과 조앤은 달걀을 분리해 흰자 거품을 내고 슈거 파우더를 체로 쳤다. 다음으로 이미 마지팬으로 싸놓은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은쟁반 위에 올렸고, 실라와 그레이스는 서로 자기가 아코디언을 연주할 차례라고 싸웠다.

펄롱은 벌떡 일어나 석탄통을 광으로 가져가 무연탄을 채우고 장작을 가지고 들어왔고 빗자루를 집어 바닥을 쓸기 시작했다.

"그거 지금 해야 해?" 아일린이 말했다. "이제 케이크 장식하려는데."

펄롱이 바닥에서 쓸어 담은 먼지, 흙, 호랑가시나무 잎, 솔잎을 스토브에 쏟아붓자 불이 확 타오르며 타다닥 소리를 냈다. 방이 사방에서 조여드는 느낌이었다.

 

 

지금 펄롱의 마음은 딴 데 있다.

 

연말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출근한 펄롱은 그날 할 일을 마치고, 직원들에게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미시즈 윌슨의 농장 일꾼으로 일하던 네드를 찾아가 명절 인사를 하는 동안 아마도 이 따스한 노인이 자신의 아버지일 것으로 짐작해 본다.

아내의 선물을 산 다음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세탁소의 석탄 광으로 들어가 거기서 혹사당하고 있는 소녀 세라를 데리고 나온다.

 

세라와 함께 집으로 향하며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걱정한다.

생전의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자신을 어떻게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생각한다. 그것들이 한데 합쳐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는 것, 미시즈 윌슨이 아니었다면 자신의 어머니도 결국 그 세탁소에 가고 말았을 것을 생각한다.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순진한 마음으로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한다. 진심으로 그렇게 믿으며 소녀와 함께 집으로 향한다.

 

소설 끝의 '덧붙이는 말'에 이런 문장이 들어 있다.

 

"(...) 1996년에야 아일랜드의 마지막 막달레나 세탁소가 문을 닫았습니다. 이 시설에서 은폐·감금·강제 노역을 당한 여성과 아이가 얼마나 많은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덧붙임> 2015년, 미국의 메탈 록 밴드 디스터브드가 커버한 버전의 The Sound Of Silence가 생각났다.

https://youtu.be/u9Dg-g7t2l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