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레어 키건 소설 《맡겨진 소녀》 FOSTER
허진 옮김, 다산북스 2023
어머니는 아이들 돌보고 집안일 하고 밭일까지 하느라 지쳤다. 또 출산을 앞두고 있다. 소녀를 먼 친척집에 맡긴다.
소녀를 맡은 킨셀라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따뜻하다.
마당을 비추는 커다란 달이 진입로를 지나 저 멀리 거리까지 우리가 갈 길을 분필처럼 표시해 준다. 킨셀라 아저씨가 내 손을 잡는다. 아저씨가 손을 잡자마자 나는 아빠가 한 번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런 기분이 들지 않게 아저씨가 손을 놔줬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힘든 기분이지만 걸어가다 보니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나는 집에서의 내 삶과 여기에서의 내 삶의 차이를 가만히 내버려 둔다. 아저씨는 내가 발을 맞춰 걸을 수 있도록 보폭을 줄인다. 나는 작은 주택에 사는 아주머니를, 그 여자가 어떻게 걷고 어떻게 말했는지를 생각하다가 사람들 사이에는 아주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킨셀라 부부와 함께하는 일상적인 일들이 소녀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소녀의 가슴속에는 잔잔한 바람이 솔솔 불어가는 듯하다.
킨셀라 부부는 애틋하기 그지없다. 부부는 사고로 그만한 나이의 아들을 잃었다.
소녀도 그것을 알게 된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가 없게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이어진다.
끝까지 이대로 따뜻한 일들이 계속되기를 바라면서도(이런 소설이 있나? 있어도 되나?), 끝까지 (소설로서의 약속된) 반전을 기다린다.
약속한 기간이 지나 킨셀라 부부가 소녀를 집에 데려다주고 떠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차가 떠나고 나서 엄마가 묻는다.
"아무 일도 아니에요." 내가 말한다.
"말해."
"아무 일도 없었어요."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가 묻고 있지만 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절대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 만큼 충분히 배웠고, 충분히 자랐다. 입을 다물기 딱 좋은 기회다.
자갈 진입로에서 자동차가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와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어느새 나는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을 하고 있다.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나는 선 자세에서 곧장 출발하여 진입로를 향해 달려 내려간다. 심장이 가슴속이 아니라 내 손에 쥐어져 있는 것 같다. 나는 내 마음을 전하는 전령이 된 것처럼 그것을 들고 신속하게 달리고 있다. 여러 가지 일들이 마음속을 스친다. 벽지에 그려진 남자아이, 구스베리, 양동이가 나를 아래로 잡아당기던 그 순간, 길 잃은 어린 암소, 젖은 매트리스, 세 번째 빛, 나는 내 여름을, 지금을, 그리고 대체로 지금 이 순간만을 생각한다.
모퉁이를 돌아 차마 똑바로 쳐다볼 용기나 나지 않는 곳에 도착하니 아저씨가 대문 죔쇠를 돌려놓고 다시 잠그고 있다. 아저씨의 시선은 아래를 향하고 있다. 자기 손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내 발이 진입로 중앙에 풀이 지저분하게 자란 부분을 따라 달리며 울퉁불퉁한 자갈을 세차게 밟는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딱 하나밖에 없고, 내 발이 나를 그곳으로 데려간다. 아저씨는 나를 보자마자 딱 멈추더니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나는 망설임 없이 아저씨를 향해 계속 달려가고, 그 앞에 도착하자 대문이 활짝 열리고 아저씨의 품에 부딪친다. 아저씨가 팔로 나를 안아 든다. 아저씨는 한참 동안 나를 꼭 끌어안는다. 쿵쾅거리는 내 심장이 느껴지고 숨이 헐떡거리더니 심장과 호흡이 제각각 다르게 차분해진다. 어느 순간, 시간이 한참 지난 것 같은데, 나무 사이로 느닷없는 돌풍이 불어 우리에게 크고 뚱뚱한 빗방울을 떨어뜨린다. 눈을 감으니 아저씨가 느껴진다. 차려입은 옷을 통해 전달되는 아저씨의 열기가 느껴진다. 내가 마침내 눈을 뜨고 아저씨의 어깨 너머를 보자 아빠가 보인다. 손에 지팡이를 들고 흔들림 없이 굳세게 다가온다. 나는 손을 놓으면 물에 빠지기라도 할 것처럼 아저씨를 꼭 붙든 채 아주머니가 목구멍 속으로 흐느끼다가 울다가를 반복하는 소리를 듣는다. 꼭 한 명이 아니라 두 명 때문에 우는 것 같다. 나는 차마 눈을 뜰 수가 없지만 그래도 억지로 뜬다. 킨셀라 아저씨의 어깨 너머 진입로를, 아저씨가 볼 수 없는 것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아저씨 품에서 내려가서 나를 자상하게 보살펴 준 아주머니에게 절대로,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고 얘기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지만, 더욱 심오한 무언가 때문에 나는 아저씨의 품에 안긴 채 꼭 잡고 놓지 않는다.
"아빠." 내가 그에게 경고한다. 그를 부른다. "아빠."
이게 끝이다. 이게 반전이다. 이 문장의 단어 하나하나에는 소녀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클레어 키건은 대단하다. 문장은 시 같고, 간단한 문장 속에 긴 설명이 스며 있다. 생략하고 축약한다.
이미 이런 소설이 있는데도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들도 대단하다고, 모든 소설의 독자이고 싶은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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