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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무라이 슌스케의 정원

by 답설재 2025. 10. 14.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火山のふもとで)》는 건축사 무라이 슌스케의 삶을 그렸다.

그가 이루어 놓은 사무소 직원들의 일상과 일터를 보여주고 있다.

 

1982년, 무라이건축설계사무소 직원들은 국립현대도서관 설계 경합을 앞두고 아사마 산 자락의 별장에서 여름 한 철을 보낸다.

직원들은 무라이 슌스케를 소장이나 대표 같은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모두들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선생님의 건축에 들어서면 아무도 큰 소리를 안 내게 돼. 마음이 포근해지는 촉감이라든가 부드럽게 들어오는 광선이라든가...... 늘 쓰는 사람이 한참 지나서야 겨우 알아챌 수 있는 장치들이 소곤소곤 말을 걸어오는 것 같거든. 사람 목소리도 거기에 맞춰 작아지는 거야."

 

 

삶과 맞닿은 건축을 꿈꾸는 사람들과 언제까지나 계속되었으면 했던 그 여름의 고아한 나날들......

그러나 여름은 가고 무라이 슌스케는 병들지만, 건축설계사무소의 일들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나 싶은 소설이다.

 

 

우리 아파트 중앙공원에는 계수나무가 늘어서 있다. 여름의 계수나무들은 저쪽 건물이 보이지 않게 막아버리고, 가을이 되면 동그랗고 노란 잎을 떨구어 고즈넉한 길을 만든다.

 

 

"여기는 가을에서 겨울에 걸쳐서가 아주 좋아. 이번 주말에 낙엽이 피크일지도 모르겠군."

식당에서도 계수나무 잎사귀의 밝은 황금색 무리가 보인다.

"근사해요."

"왠지 두려울 정도야."

 

 

무라이 슌스케를 생각하면 가루이자와의 그 별장이 그려지고, 계수나무들과 히말라야 삼나무, 금계나무, 산초나무, 단풍나무, 후박나무들이 보인다.

그 숲속으로 간간이 들리는 말러 교향곡 4번, 슈베르트 즉흥곡 혹은 피아노 소나타, 브람스 피아노협주곡 2번, 슈만.......

 

나는 우리 아파트 중앙공원의 저 메타세쿼이아와 계수나무 아래를 지나면 소설 속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어제는 소설의 어디에 메타세쿼이아가 나오는지 저녁 내내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히말라야 삼나무를 메타세쿼이아로 착각한 것 같았다.

사실은 내가 가슴속에 그려놓은 가루이자와의 그 별장 정원은 소설의 어디에도 다 나타나 있지는 않다. 나는 그 사람들과 그들이 일하던 그 정원을 영화처럼 꾸며놓고 그리울 때마다 미완성의 그 영화를 감상하고 있다.

 

"선생님"으로 불린 무라이 슌스케의 일상과 삶의 마지막이 부러워서 그에게 보내는 편지 한 통을 써서 내 책 《가르쳐보고 알게 된 것들》의 마지막에 실어 놓았다.

내가 세상에서 정말로 부러운 사람은 무라이 슌스케라는 것을, 이 책을 읽고, 그리고 학교와 교육부에서 가르치는 일을 해보고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