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나는 다담다담 키워 놓은 썩배기

by 답설재 2025. 10. 1.

 

 

 

 

'다담다담'이란 '이쁜준서' 님 설명(블로그 "봄비 온 뒤 풀빛처럼")에 의하면 정성을 표현하는 말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우리의 것을 그렇게 준비한 것으로, 물자가 풍족한 시대의 우리는 아이들 것을 그렇게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세월을 살았다고 했다.

 

             다담다담 ☞ https://asweetbasil.tistory.com/17955857

 

 

 

다담다담은 사전에 나오지 않는가 싶었는데, 네이버 국어사전 예문에서 다음과 같은 풀이를 봤다.

 

 

우리 새아가는 밥상을 참말로 다담시럽게 잘 차린다. → 다담시럽다 

(번역) 우리 새아가는 밥상을 참말로 아담하고 깔끔하게  차린다.

우리말샘

 

 

 

이렇게 찾아보다가 문득 '썩배기'란 말이 생각났다.

내 아버지는 일쑤 그 말을 사용했다. 썩배기를 다음 한국어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우리말샘

명사

(1) 썩은 나무의 그루터기 (경북)

   산에 가서 썩배기 한 짐 해 올라 칸다.

  → 산에 가서 썩은 나무 그루터기 한 짐 해 오려 한다.

 

 

사람을 썩배기에 비유하면 씁쓸한 미소를 짓게 된다.

썩배기란, 그러니까 발로 툭 차면(더러 건드리기만 해도) 곧 쓰러지는 사람이다.

왜 그처럼 힘없이 쓰러지나?

이미 뿌리마저 다 썩어버렸기 때문에 그렇게 서 있긴 해도 조금만 건드리면 힘없이 쓰러지는 것인데, 사람이 그렇게 쓰러진다면 참 가엾은 허약체질이 분명할 것이다.

 

썩배기는 또 발로 툭 차거나 건드릴 필요조차 없는 경우도 있다.

산비탈에서 정신없이 놀다가 뭐가 발에 걸린 느낌이 들어 뒤돌아보면 난데없는 썩배기 하나가 나뒹굴어 쓰러져 있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넘어진 것이 만약 사람이라면 얼른 변명을 해야 할 것이다.

"나는 건드린 적 없다! 저건 저절로 나뒹굴어 놓고 핑계를 대려고 한다! 나는 억울하다!"

 

이럴 때 CCTV를 돌려보거나 주변에서 바라본 사람, 지나가다가 무심코 바라본 사람이 있다면 사건은 좀 복잡해진다.

내가 의도적으로 건드린 건 아니지만, 나도 몰래 내 뒷발이 그 썩배기에 스친 건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썩배기는 우스운 존재다.

그렇게 서 있다가 바람만 불어도 그걸 핑계로 넘어지고 마는 실없는 존재다.

 

나는 내 아버지로부터 썩배기로 불린 적이 있나?

모르겠다.

오래되어 그런지 기억에 없다.

그렇지만 내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나를 보고 마침내 썩배기가 분명하다고 할 것 같다.

벌써 쓰러졌을 인간이 이렇게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다담다담' 키워 놓은 '썩배기'다.

 

 

 

'내가 만난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느낌적인 느낌? 뭐지?  (10) 2025.10.06
알 수 없는 하루의 길이  (10) 2025.10.03
이걸 누가 갖다 놓았을까?  (11) 2025.09.30
올가을 날씨  (10) 2025.09.27
상선의 삶  (19) 2025.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