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목사관은 작은 숲속에 있었다. 물론 일부러 숲속에 지은 것은 아니었다. 전임자들이 정원을 가꾸려고 가져와 심은 묘목들이 주위로 퍼져나가 숲이 된 데다, 한때 그곳에서 자랐을 풀밭이나 누군가가 가꾸었을 화단도 덤불에 모두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진입로는 이제 터널이나 다름없었다. 내 부츠가 저벅거리는 소리에 산비둘기들이 굵고 가는 나뭇가지들 틈새로 후드득 날아올랐다. 모퉁이를 돌자마자 산토끼 한 마리와 마주쳤다. 토끼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어치 한 마리가 하늘을 가로질렀다. 어치라니! 그런 새는 책에서만 봤는데, 이곳이 현대판 에덴동산인가!
목사관은 숲속의 공터에 서 있었는데, 과거에 집 둘레에 만들어 둔 마차용 진입로는 오랜 세월 버텨온 거대한 삼나무에 가로막혀 있었다. 여러 갈레로 찢긴 그 나무의 뿌리들은 절벽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지면에서 들어 올려져 있고 마을만 한 정원을 지탱했으며, 틈새마다 이미 야생식물에 점령되어 있었다.
─ 《요크셔 시골에서 보낸 한 달》(J. L. 카)에서.

가난하고 순수한 청년 톰 버킨은 요크셔 시골 마을 교회의 벽화 '최후의 심판' 복원 작업을 맡았다.
목사 키치는 고약한 사람이다. 벽화 복원은 대충 하면 그만이지 않느냐는 듯한 태도이고 품삯도 잘 주지 않는다.
아름다운 앨리스 키치는 어떻게 그런 인간의 아내가 되었을까.
벽화 복원 작업을 지켜보며 톰 버킨에게 다가온다.
톰이 손을 내밀었으면 좋았겠지.
시간이 자꾸 가는데도, 남녀는 사랑 같은 건 해보지 않은 소년소녀 같았다.
작업을 끝낸 톰이 미적거리고 있어서였을까? 어느 날 목사 키치는 앨리스를 데리고 사라졌다.
앨리스가 없는 소설을 또 읽을 수는 없다. 아름다운 이 소설을 다시 읽고 싶은 마음까지 사라져 버렸다.
그 목사관 정원의 묘사 장면을 여러 번 읽었다.
그 여름, 목사 키치가 내게 정원 정비 작업을 맡겼다면 나는 톰과 앨리스의 사랑도 지켜보고 목사관 정원도 본래의 아름다웠을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을 것 같았다. 단 톰과 앨리스가 그곳에 있다는 조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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