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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J. L. 카의 정원(庭園)

by 답설재 2025. 12. 4.

그의 목사관은 작은 숲속에 있었다. 물론 일부러 숲속에 지은 것은 아니었다. 전임자들이 정원을 가꾸려고 가져와 심은 묘목들이 주위로 퍼져나가 숲이 된 데다, 한때 그곳에서 자랐을 풀밭이나 누군가가 가꾸었을 화단도 덤불에 모두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진입로는 이제 터널이나 다름없었다. 내 부츠가 저벅거리는 소리에  산비둘기들이 굵고 가는 나뭇가지들 틈새로 후드득 날아올랐다. 모퉁이를 돌자마자 산토끼 한 마리와 마주쳤다. 토끼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어치 한 마리가 하늘을 가로질렀다. 어치라니! 그런 새는 책에서만 봤는데, 이곳이 현대판 에덴동산인가!

목사관은 숲속의 공터에 서 있었는데, 과거에 집 둘레에 만들어 둔 마차용 진입로는 오랜 세월 버텨온 거대한 삼나무에 가로막혀 있었다. 여러 갈레로 찢긴 그 나무의 뿌리들은 절벽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지면에서 들어 올려져 있고 마을만 한 정원을 지탱했으며, 틈새마다 이미 야생식물에 점령되어 있었다.

 

─ 《요크셔 시골에서 보낸 한 달》(J. L. 카)에서.

 

 

 

 

 

 

가난하고 순수한 청년 톰 버킨은 요크셔 시골 마을 교회의 벽화 '최후의 심판' 복원 작업을 맡았다.

목사 키치는 고약한 사람이다. 벽화 복원은 대충 하면 그만이지 않느냐는 듯한 태도이고 품삯도 잘 주지 않는다.

아름다운 앨리스 키치는 어떻게 그런 인간의 아내가 되었을까.

벽화 복원 작업을 지켜보며 톰 버킨에게 다가온다.

톰이 손을 내밀었으면 좋았겠지.

시간이 자꾸 가는데도, 남녀는 사랑 같은 건 해보지 않은 소년소녀 같았다.

작업을 끝낸 톰이 미적거리고 있어서였을까? 어느 날 목사 키치는 앨리스를 데리고 사라졌다.

앨리스가 없는 소설을 또 읽을 수는 없다. 아름다운 이 소설을 다시 읽고 싶은 마음까지 사라져 버렸다.

 

그 목사관 정원의 묘사 장면을 여러 번 읽었다.

그 여름, 목사 키치가 내게 정원 정비 작업을 맡겼다면 나는 톰과 앨리스의 사랑도 지켜보고 목사관 정원도 본래의 아름다웠을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을 것 같았다. 단 톰과 앨리스가 그곳에 있다는 조건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