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환상적인 여름에는 시간이 참 많았다. 매일 동이 터오면 들판에서 안개가 피어올랐다. 울타리와 헛간, 숲이 서서히 형태를 갖춰가고 마침내 구릉의 구불거리는 기다란 등이 평원으로부터 또렷해졌다. 그 광경은 일종의 무대 마술 같았다. "자, 아무것도 안 보이시죠. 사실 볼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보십시오!" 매일 그렇게 하루가 시작되었다. 나는 매일 아침 교회의 문에 기댄 채 첫 담배를 피우며 이 근사한 배경막(이렇게 즐겨 생각했다)에 경탄을 했다. 아니 그랬을 리가 없다. 나는 경탄하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시 그때는 그런 인간이었나? 어쨌든 한 가지는 확실하다. 당시 나는 크나큰 만족감에 푹 빠져있었다. 그리하여 내가 처한 상황을 생각할 때면, 이 시간이 끝나지 않고, 아무도 가고 오지 않으며, 가을과 겨울은 항상 저 모퉁이 너머에서만 어슬렁거리고, 여름이 되어 무르익어가는 시간은 영원히 이어지고, (나보다 먼저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있듯이) 그 무엇도 내 앞길이 가는 방향을 방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즐겨 생각했다.
매일 하루가 시작되는 과정은 대동소이했다. 나는 차를 내리고, 얇게 저민 베이컨 두 장을 굽고, 빵 한 덩어리를 먹은 후 창가에서 쐐기풀이 무성한 땅으로 요강을 비웠다. 그런 후 아래로 내려가서 라일락 덤불 뒤로 갔다가(그곳에서는 큰 낫을 경계하고) 잠시 후 엘리야 플레처의 무덤을 세면대 삼아 면도를 했다. 이때쯤이면 이미 일어나 있던 문이 들판을 가로질러 올 나와 차를 마시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초등학교에서 1교시 수업 종소리가 날 때 작업을 시작하기로 정했다.
우리는 작업을 시작하면─한낮에 짧게 쉬기는 했지만─저녁 6시나 7시까지 무척 열심히 일했다. 작업대에 올라가면 나는 마음의 눈으로 처음에는 이것을 보고 다음으로는 저것을 보려고 애를 쓰며 내 사냥감(이런 표현이 상투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주위를 조심스럽게 맴돌곤 했다. 내 일에서 두 번째 시도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슬픈 사랑 이야기가 들어 있는 소설 "요크셔 시골에서 보낸 한 달"(A Month in the Country : J. L. 카)의 이 아름다운 부분은 가브리엘 루아의 아름다운 소설 "내 생애의 아이들"의 다음 문장을 떠올리게 했다.
흔히 나는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준비를 다 마치곤 해서, 칠판은 본보기들과 그날 풀어야 할 문제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나는 책상에 가 앉아서 우리 학생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느라 마음이 급했다. 나는 한 줄기 작은 오르막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거기에, 아이들이 하늘 저 밑으로 가벼운 꽃장식 띠 같은 모양을 그리며 하나씩 하나씩, 혹은 무리를 지어 나타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매번 나는 그런 광경을 바라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는 광대하고 텅 빈 들판에 그 조그만 실루엣들이 점처럼 찍히는 것을 볼 때면 이 세상에서 어린 시절이 얼마나 상처받기 쉽고 약한 것인가를, 그러면서도 우리들이 우리의 어긋나 버린 희망과 영원한 새 시작의 짐을 지워놓는 곳은 바로 저 연약한 어깨 위라는 것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절감하는 것이었다.
앞의 소설에는 무명의 화가가 교회의 벽화를 복원하는 이야기가 배경이 되고 있다.
두 번째 소설은 전직이 초등학교 교사인 작가 가브리엘 루아가 썼다.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교사도 사람을 아름답게 해 줄 수 있는, 예술가일 수도 있겠다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
'책 보기의 즐거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무라사키 시키부 일기」 속 정원 (8) | 2025.12.01 |
|---|---|
| 클레어 키건 소설 《푸른 들판을 걷다》 (6) | 2025.11.27 |
| 아모스 오즈의 정원 (9) | 2025.11.16 |
| 장 그르니에 《섬》 (4) | 2025.11.12 |
| 밑줄 그은 책의 값어치 (6) | 2025.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