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레어 키건 소설 《푸른 들판을 걷다》
허진 옮김, 다산책방 2024
클레어 키건의 소설은 긴장감을 준다.
남자는 아내나 자식들에게 수준 낮게 약아빠지게 저질스럽게 대하다가 결국 당한다.
「작별 선물」
아버지라는 녀석이 아내의 묵인하에 어린 딸을 학대하고, 그 딸이 아버지의 말을 몰래 팔아서 뉴욕으로 떠나는 날에도 돈을 줄듯 말 듯하다가 만다. 아들도 살길을 찾아 떠날 예정이니 결국 자식을 다 잃는다.
이제 당신은 층계참에 서서 행복을, 좋은 날을, 즐거운 저녁을, 친절한 말을 기억해 내려고 애쓴다. 작별을 어렵게 만들 행복한 기억을 찾아야 할 것 같지만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 대신 키우던 개 세터가 새끼를 여러 마리 낳았을 때가 기억난다. 어머니가 당신을 그의 방에 들여보내기 시작한 즈음이었다.
「푸른 들판을 걷다」
사제는 사랑하는 여인의 결혼식을 주관하고 실의에 빠져 헤매다가 중국인의 간호로 목숨을 잇게 된다.
하느님은 어디 있지? 그가 물었고, 오늘 밤 하느님이 대답하고 있다. 사방에서 야생 커런트 덤불이 풍기는 짙은 냄새가 뚜렷하다. 양 한 마리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 푸른 들판을 가로지른다. 머리 위에서 별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하느님은 자연이다.
그는 뉴리 외곽에서 롤러의 딸과 알몸으로 누워 있던 것을 기억한다. 홀씨가 된 그 모든 민들레꽃을, 그리고 언제까지나 그녀를 사랑하겠다던 말을 기억한다. 그는 그 모든 일들을 온전히 기억하지만 부끄럽지 않다. 살아 있다는 것은 얼마나 이상한지. 곧 부활절이다.
「검은 말」
브래디는 사랑하는 여자에게까지 이기적으로 대하다가 여자가 떠나자 결국 후회 속에서 살아간다.
그가 침대에 들어가 점퍼를 벗는다. 신발도 벗고 싶지만 두렵다. 신발을 벗으면 아침에 절대 다시 신지 못할 것이다. 그는 이불 밑에서 몸을 웅크리고 커튼이 없는 창문을 바라본다. 이제 겨울이다. 저 밖에서 뭘 하는 걸까? 텃밭에서 바람이 피리 소리 비슷한 끔찍한 소리를 내고 어딘가에서 짐승이 울부짖는다. 그는 매퀘이드의 개가 내는 소리이기만을 바란다. 브래디는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고 오직 그녀만을 생각한다. 심장박동이 느껴진다. 곧 그녀가 돌아와서 그를 용서하리라. 굴레가 다시 옷걸이에 걸리고 식탁에 식탁보가 깔리겠지.
「삼림 관리인의 딸」
삼림 관리인은 아내와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지 않고 오로지 땅에만 집착하다가 마침내 아내가 마을 사람들에게 다 털어놓아 버리고 집마저 불타버린다.
"엄마가 사랑에 대해서 뭘 알아요?"
이 말이 그녀의 가슴을 때린다. "나도 사랑을 알아." 마사가 우긴다.
"엄마는 아빠를 사랑하지 않잖아요. 엄마가 신경 쓰는 건 돈밖에 없잖아요."
아니다! 그 엄마는 모든 상황을 바꾸어버린다.
「물가 가까이」
백만장자의 양아들이 그 아버지와 어머니의 인간답지 못한 태도를 보며 자신을 키워 준 할머니를 그리워한다.
그때 남편이 회중시계를 꺼냈다.
"한 시간이야, 마시. 한 시간 줄게." 그가 말했다. "한 시간 뒤에 이 자리로 돌아오지 않으면 당신이 알아서 집까지 찾아와."
할머니는 맨발로 거품이 이는 바닷가를 30분 동안 걸어간 다음 절벽 길을 따라 돌아왔고, 약속 시간이 5분 지났을 때 남편이 차 문을 쾅 닫고 시동을 켜는 것을 보았다. 그가 차를 출발시키려 할 때 할머니가 도로에 뛰어들어 차를 세웠다. 그런 다음 차에 올라탔고, 자신을 두고 집에 가려 했던 남자와 평생을 함께 살았다.
「굴복」
약혼녀를 둔 중사는 사람들을 통제하고 괴롭히는 데서 희열을 느끼다가 그 약혼녀가 편지와 함께 반지를 되돌려주자 약혼녀에게로 달려간다.
그는 반지와 열쇠를 확인한 다음 페달에 발을 올리고 출발했다. 곧 그는 힘들게 페달을 밟아 언덕을 올라가면서 이제 빈둥거리며 여자들의 얼굴을 붉히게 만들던 시절이 끝나고 있음을 인식했다. 싸늘한 느낌이 치솟았다. 그에게는 새로운 느낌이었고, 새로운 것은 뭐든 그러하듯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뭐라고 말할지 생각하면서 페달을 계속 밟았다.
「퀴큰 나무 숲의 밤」
마거릿은 결혼을 약속했던 사촌이 사제가 되면서 버림받고 아이까지 잃은 뒤에 그 사제가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집을 찾아가 은둔해 있다가 이웃 청년과의 사이에 낳은 아들을 데리고 당당하게 사제의 집을 떠난다.
마거릿은 잠들기 전에 벽 너머의 이웃이 침대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게 여기긴 해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무엇도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이미 일어난 과거를 말로 표현하는 것은 무의미해 보였다. 과거는 곧잘 배신을 했고, 천천히 움직였다. 자기만의 속도로 결국은 현재를 따라잡을 것이다. 게다가 어차피, 뭘 할 수 있을까? 후회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고 슬픔은 과거를 다시 불러올 뿐이었다.
끝에 실린 이 소설은 설화처럼 몽환적이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을 더 읽고 싶지만 이제 없다. 또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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