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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치어리더처럼 양손을 들어 흔들어준 그 간호사

by 답설재 2025. 2. 12.

 

 

 

아내와 병원에 다녀왔다.

연중 둘이서 병원 가는 날짜를 다 헤아리면 한 달은 될까? 거의 그렇다.

아내는 본래 초저녁에 잠자리에 들지만 이런 날은 녹초가 되어 더 일찍 거의 쓰러져 잔다.

 

내가 병원에 갈 땐 나 혼자 가고, 아내가 병원에 갈 땐 천하 없는 일이 있어도 내가 운전사 겸 보호자가 된다.

할 일이 많다. 출발 시각 정하기부터 병원에 도착하면 들러야 할 곳의 위치를 알아서 척척 앞장서고, 수납도 접수도 알아서 처리하고, 간호사에게 도착 신고하기, 진료 마치면 간호사의 설명 듣기, 식당과 메뉴 선택하기, 처방전 가지고 약국 가기, 뭐가 더 있을 것 같은데 다 생각나지 않는다.

 

집에 돌아오면 사실은 나도 파김치, 곤죽이 되는데 나는 지금 동관 주사실 간편 주사 담당 간호사를 생각하고 있다.

그녀는 주사를 놓아준 다음, 입구에서 머리만 들이밀고 바라보는 나를 발견하고는 얼른 치어리더처럼 두 손을 들어 반짝반짝 흔들어주었다.

"아, 할아버지가 이 할머니 남편이야? 괜찮아! 이 주사는 흔히 맞는 아주 기초적인 주사야. 내가 보장할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알았지? 잘 가~"

그런 '반짝반짝'인 것 같았다.

 

좀 멀어서 눈이 나쁜 내가 그 얼굴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손녀뻘인 처녀? 어쨌든 아내를 기다리는 나에게 그녀는 고개를 들자마자 그렇게 손을 흔들어주었는데, 나는 드나드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 봐, 그리고 아내가 무사히 주사를 맞은 것만으로 관심사는 끝났으므로 그 치어리더 같은 아름다운 처녀에게 인사를 해줄 만한 겨를도 입장도 아니어서 그냥 돌아섰는데, 그게 도리가 아니었다는 느낌을 갖게 된 것이다.

 

6개월 후에 또 주사를 맞는다면 그때도 요행히 그 간호사일까?

그러면 그때 고마움을 나타내는 적절한 인사를 하면 될까?

아니, 6개월 후에는 담당의사의 진료 결과에 따라 주사를 맞아야 할지 맞지 않아도 될지 결정되는 것인데, 내가 오늘 주사를 맞고 저렇게 쓰러져 자고 있는 아내가 다음에도 또 주사를 맞았으면 하고 지금부터 그걸 바라게 된다면 이건 말이 되질 않으니, 결국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 것일까?

 

모르겠다!

방법이 있긴 하다. 멀어서 초록색 제복을 입은 소녀라는 것만 파악한, 그렇지만 분명히 경기장의 치어리더처럼 예쁘고, 거기에 마음씨도 밝고 고운 사람이 확실한 그 간호사를 그리워하면서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자는 것이다.

혹 모를 일이지. 나의 이 마음이 텔레파신가 뭔가가 되어 그녀에게 닿을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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