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은 영영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느낌의 겨울은 나에게는 여러 번이었다.
가을이 소식도 없이 가버리고 겨울이 왔을 때, 서서히 그러나 압도적으로 완전하게 2024년 겨울이 그렇게 왔을 때, 나는 또 그런 느낌이었다.
기이한 일은 그렇게 기세 좋게 온 겨울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저 멀리 사라진 후에 가버렸구나 하고 깨닫곤 했다.
그래서였는지 그렇게 가는 그 겨울들이 때로는 섭섭하기도 했다.
이번 겨울은 더 그런 것 같다.
시작될 때의 그 도도한 모습과 지금, 가겠다는 기별도 없이 가고 있는 모습을 상투적이지만 용두사미(龍頭蛇尾) 같다고 해야 적절할 것 같다.
나는 어제 저 거대하고 을씨년스러운 수채와 지저분한 개울과 주변의 나뭇가지들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한겨울에 이곳을 지나며 내려다보면 저 나뭇가지들은 이제 영영 되살아나지 못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눈이 내렸던 그 전날까지만 해도 도저히 가망이 없을 것 같았는데 어제, 입춘이 지나고 어김없이 우수(雨水)가 다가와 있는 걸 달력에서 보고 나간 길에 바라보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금방이라도 새눈이 솟아오를 것 같은 분위기였다.
봄 움직임을 내 흐릿한 눈으로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저것들은 보이지 않게 준비해서, 입춘 지나 한동안 잊고 있으면 희한한 갖가지 모습을 감추고 있다가 바보라도 알아볼 수 있도록 어느 날 아침 깜짝 변신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 모습을 보는 날의 아침에는 저 수채나 지저분한 쓰레기 같은 건 눈길을 끌지 못한다.
순식간에 저런 것들을 다 감추어버린다. 인간들이 하는 짓을 감추어버리려는 듯.
그렇게 변해가는 며칠간의 즐거운 잔치는 그들만의 작업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나에게는 그게 문제다.
'나는 이번 봄을 제대로 맞이할 수 있을까?'
'이번 봄이 다시 여름으로 변신해서 세상을 바꾸는 동안 그 작업에 제대로 참여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2025년 봄도 가슴이 울렁거리게 한다.
'어떻게 하지?'
'내가 맡은 곳의 봄이 여름이 되게 하고 여름답도록 할 수 있을까?'
그렇겠지?
부닥쳐 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겠지?
소극적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나로서는 달리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게 어쩔 수 없는 내 스타일이다.
저기 저 뿌리가 다 드러난 컨테이너 박스 앞 철조망은 겨울 동안 제 구실을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했다.
그렇지만 봄부터 가을까지는 어림도 없다.
곧 온갖 풀들이 자라나서 바위고 뭐고 완전하게 뒤덮어버리고, 덩굴들은 철조망도 가만두지 않는다.
어디서 기어 오는지 뒤늦게 칡덩굴이 나타나면 다른 풀들 머리 위로 사정없이 기어 올라가고 그것들은 밤새 길도 덮어버리게 된다.
봄은 살며시 시작해서 그렇게 여름으로 자라나는 것인데 인간은 자연을 완전히 망가뜨리겠다고 벼르지만 가능할지 두고 봐야 한다. 장담하는 건 어리석다는 걸 알아야 한다.
나는 아예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다만 이제 봄이 시작되고 있으니까 최소한 박자라도 맞추어 보자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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