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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유종호 문학평론집 《시와 말과 사회사》

by 답설재 2025. 2. 11.

 

 

 

 

유종호 문학평론집 《시와 말과 사회사》

서정시학 비평선 18, 2009

 

 

 

제1부 '시와 말과 사회사'에서는 낱말 하나하나에 이르는 정독을 강조하고 그 사례를 보여준다.

 

제2부 '시론과 시인론'에서는 서정시의 근간, 시론, '청록집', 김춘수의 시세계(이데아의 음악과 이미지의 음악), 반시대적 서정시인 김영랑, 미당 서정주의 삶과 시, 시조의 오늘과 내일, 평가와 지적 유행, 친일시에 대한 소견을 이야기한다.

 

유종호의 글은 치밀하면서도 유연하고 재미있다.

지루한 줄 모르고 읽었다.

 

다만 제1부에서 오독 사례를 이야기할 때 특정인을 호명한 부분들은 껄끄러웠다. 아름다운 모자이크에 흙물이 튄 느낌이었다. 그 다른 이가 그렇게 했더라도 그냥 설명했더라면 싶었다. '나의 이 책'은 도서관에서 빌린 게 아니라 나오자마자 '아낌없이' 사놓은 '나의 좋은 책'이어서 그렇다.

 

 

꼼꼼히 읽기 혹은 정독은 반드시 텍스트의 온전한 이해를 위해서만 득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삶의 관리와 자기 관리를 위해서도 필요하고 득이 되는 기율의 일환이기도 하다. 문학 작품의 텍스트를 정독하는 습관은 사람과 세상이란 텍스트를 정독하는 습관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모든 자명해 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방법적 회의를 실천하게 한다. 자명성이란 거죽을 뒤집어 보고 찬찬하게 살피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은 지적 모험의 계기나 단초가 되어 준다. 정독은 언어의 엄밀한 운영을 동경하게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지적 엄격성을 기르게 한다. 정독은 그러므로 문학교육에 한하지 않고 인문적 훈련의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된다. 지적 엄격성의 결여는 도덕적 염결성의 결여와 해이로 이어진다.(15)

 

제대로 읽기란 의미 단원론單元論의 입장에서 하나의 올바른 해석이 있고 그 올바른 해석에 이르는 것만이 제대로 읽기란 뜻이 아니다. 해석은 작품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이고 작품에는 여러 차원의 의미가 있게 마련이다. (...) 제대로 읽기를 상정하는 것은 작품해석이나 성취도 인지 사이에서 아주 엉뚱한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는 정도의 느슨한 뜻에서다.

제대로 읽기를 저해하는 가장 큰 장애요소로 작품에 대한 통찰을 전혀 주지 못하는 채 오도하며 범람하는 이차담론 문서들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 스노비즘을 특징으로 하는 이차담론도 단연 경계해야 한다. (...) 세평에의 전면적 의존도 안목을 기르는 데 장애요인이 된다. (...) 이 세상 범백사가 그렇듯이 시의 이해와 안목의 개발에도 왕도는 없다. (...) 모든 것이 조작과 관리의 대상이 되어 있는 현대사회에서 예술 향수는 아마도 드물게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자발성과 진정성의 영역일지도 모른다.(170~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