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비 절감 방안 T/F를 만들어 밤낮으로 토론하고 검토한 결과로써 두툼한 보고서를 만들었다. 그 일은 역사적으로는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T/F에 소속되었을 때 나는 다른 볼일을 보고 싶어서 늘 미적거리고 핑계를 대고 하다가 말았다. 미안했지만 그런 일은하기 싫었고, 그 대신 열심히 일한 사람이 좋은 평가를 받을 때 섭섭해하지 않았다.
덧붙이면, 그래봤자 별 수가 없어서 사교육은 자랄 대로 자라왔다.
소설 "주군의 여인"을 읽으며 또 그 일을 떠올렸다.
그렇게 무엇이 문제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로 국장들은 갈팡질팡하면서도 요령껏 능숙하게 말을 이어갔다. 자기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말이 너무 길어서 짜증이 난 동료들이 메모지 위에 도형을 그리고 또 우울한 얼굴로 그림을 다듬는 동안에, 판프리스는 십 분에 걸쳐 체계적일 뿐 아니라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어 베네데띠가 두 가지가 핵심이라고, 첫째로 겸허하게 자기 견해를 말하자면, 활동 계획보다는 활동 프로그램을 채택해야 한다고, 분명 프로그램이라고, 계획과 프로그램의 차이는 상당히 중요하다고, 적어도 자기 생각은 그렇다고 했고, 둘째로 활동 프로그램은, 단호히 말하자면, 특수한 계획이어야 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다른 국장들이 동의했고, 특수한 계획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원래 사무국에서는 특수한 계획이 인기가 높았다. '계획'에 '특수한'이라는 말이 덧붙으면, 무엇을 가리키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어쨌든 특수한 계획이라고 하면 그냥 계획보다 더 진지하고 확실해 보였다. 실제로, 계획과 특수한 계획의 차이를 아는 사람은 없었고, 그 중요한 형용사의 의미와 유용성에 관해 생각해 보려는 사람도 없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저 그렇게 말하는 게 더 좋아 보였기 때문에 특수한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수한 것이라고 얘기되는 순간 그 계획에는 신비스러운 매력, 풍요로운 성과를 약속하는 위엄이 실렸다.
- 알베르 꼬엔, "주군의 여인 1"(381~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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