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의 노래
이신율리
풀이 나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안개가 태어난다
멜로디와 발굽을 감춘 세계가 돋아난다
이곳은 풀밭이 뛰어다니거나
발굽을 잃어버리는 것은 흔한 일이다
엎드린 저녁은 기도를 모르지
풀밭을 덮는 폭설을 모르지
양의 기분은 묻지 않는다
멀리 있는 평안을 바라봐야 하니까
양의 목소리를 닮기 위해
뒤꿈치를 들고 여러 번 마른풀을 읽고 지나간다
양 너머에서 안개의 노래가 깊어진다
여럿이서 혼자가 되는 안개의 시간
양 한 마리 겨우 들어갈 만큼 좁거나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넓은 곳에서
출렁거리는 양 떼처럼 노래를 부른다
조금 있으면 성자가 나타날 것이다
어제 날아온 새가 다시 날아올 것이다
뛰어다니던 풀밭은 풀밭으로
잃어버린 발굽은 무너지지 않는 발굽으로
고요한 양은 없어
흰 양이 태어나겠지
잡히지 않는 성자의 옷깃을 잡고
집중해서 길을 잃으면
종소리가 멀어지면
눈으로만 풀을 뜯는 시절이 가고
먼 곳에서부터 찔레꽃이 우거지겠지
태양을 몇 조각으로 나눈 오후에는
잘 말린 안개 밖으로 노랫소리 깊어지겠지
이신율리의 시 속에 들어가면 이 시간 이곳을 잊고 싶고, 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에는 '다른 세상'도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이 시인의 시를 찾는 건 그런 시간이다.
삶은 이상한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다. 시는 설명할 수 없는 이미지를 던져주며 홀로 아름다운 결계가 된다. 인간과는 상관없이,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세계일 뿐.
이영주 시인의 「시 수업」(《현대문학》 2024년 9월호)을 읽다가 이 시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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