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얘기를 올려놓으면 나를 업신여길 인간이 드디어 이 꼴이 되었다며 코웃음을 칠 것 같아 없던 일로 하려다가 까짓 거 그런 인간은 이러나저러나 마찬가지일 것이어서 그냥 공개해 버리기로 했다.
온 시민이 잘만 다니는 멀쩡한 길에서 사정없이 엎어져 피를 좀 흘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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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중순 어느 아침나절, 나는 2~3초간 이 동네에선 간선도로라고 할 만한 도로변 인도에 엎어져 있었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었고, 잠시였다.
동네 중심가를 향해 걸어 내려가는데 어느 순간, "퍽!" 소리와 함께 내가 시멘트 보도블록에 얼굴과 배를 대고 엎어진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어처구니없어하며 어기적어기적 일어나는데 가까이 앞서가던 녀석(나보다는 10년쯤 젊어 보이는 '70대 젊은이'로 아직 10년쯤은 안심하고 살아도 될 만큼 부러운 놈)이 뒤돌아보며 "괜찮습니까?" 하고 묻더니 곧장 가던 길을 가버렸다.
'괜찮으면 내가 왜 이러고 있겠니, 응?' 싶어 코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바로 돌아서서 가던 길을 가버린 그도 그리 다정한 녀석은 아닌 것 같았다.
얼른 일어섰다.
이 상황을 본 사람이 몇 사람일까, 그걸 살펴볼 생각 같은 건 없었다. 그보다 급한 일 때문이었다. 두어 발자국 걸어봤더니 죽을 지경이 된 건 아니지만 얼굴 어디에서 피가 흘러 엉망이 되고 있는 것 같아서 얼른 냇가로 내려가(냇가라도 있길 망정이지) 장마 끝이어서 흙탕물이긴 하지만 세수하듯 얼굴을 씻었는데 열 번쯤 그렇게 하고 나서 코와 입술 사이가 '완전' 망가져 있는 걸 손바닥 감각으로 알게 되었다.
곧장 병원으로 갈까?
병원은 무슨! 점심 먹고 어디 가야 할 데도 있는데...(이렇게 해 가지고 밥은 먹겠나?)
주머니에 든 비상용 마스크로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해서 얼른 연고라도 사서 바르자.
한참을 걸어 약국에 들어가 휴지로 조심스럽게 피를 닦아내고 연고를 발랐다. 병원 갈 돈으로 연고를 아낌없이 처발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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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부위의 흉터는 두 달이 지나도 남아 있었다.
가족들은 흉터를 볼 때마다 보기 흉하다고 했고, 병원에 갔어야 한다고 했고, 내가 봐도 마치 윗입술이 갈라진 환자가 수술을 받은 자국처럼 보였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이 흉터가 영영 사라지지 않아도 그만이야! 나는 그냥 살 거야!' 생각하고 말았더니 차츰 입술이 당기는 느낌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기이하게도 방치했더니 더 잘 낫는 것 같았고 겨울이 다가오자 흉터는 말도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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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짚어야 할 건 그 길바닥이다.
이곳 시민들 중 나 말고 누가 거기에서 넘어질 수 있겠나 싶은 곳이다. 시장이나 동장이 들으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의아해할 곳이다. 시청이나 동네 주민센터에 '위험지역 분류기준'이 있다면 그곳은 당연히 가장 안전한 곳으로 분류되어야 마땅할 곳이다.
만약 내가 시청이나 주민센터를 찾아가 거기를 가리키며 길이 나빠서 인중 부분을 갈아엎었었다고 항의를 하면 '이거 치매 걸린 노인이구나!' 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나는 멀쩡한 곳에서 엎어지는 노인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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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겨울이었다.
아파트 앞 경사가 완만한 내리막길에서 이번의 나처럼 갑자기 '퍽!' 하고 엎어진, 몸집이 좀 있고 둔해 보이는 내 또래의 안타까운 노인을 본 적이 있다.
'저 정도면 미안하지만 곧 죽겠구나... 저렇게 멀쩡한 길에서 까닭 없이 엎어지다니...'
나의 그 분석이 그럴듯하다면 그날 내가 그렇게 엎어진 걸 본 사람이─예를 들면, 그때 엎어진 나를 보고 "괜찮습니까?" 물어놓고 대답도 듣지 않고 가버린 그 '70대 젊은이'가─ 재작년 겨울의 나처럼 '저 정도면 곧 죽겠구나... 저렇게 멀쩡한 길에서 까닭 없이 엎어지다니...' 생각했다면 그 녀석의 그 분석은 어떤 것인가, 쓸데없는 예측인가, 매우 그럴듯한 분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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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나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톨스토이)의 그 이반 일리치처럼 나는 그렇게 빨리 죽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건 도대체 어떤 근거일까?
사람들은 내 나이 또래의 누가 죽었다는 얘기를 하며 흔히 "살만큼은 살았지만..."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래도 나는 한참 더 살까? 왜? 어떤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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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현대문학》에서 이런 글을 보았다(이영주 「시 수업」 2024년 9월호).
노인이 된다는 것은 삶의 어스름을 생존 안에서 맞이한다는 것이다. 탈출을 꿈꾸지 않는 것이다. 생존만으로도 곧 탈출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자기의 육체를 매 순간 느낀다는 것이다. 노인은 그렇다. 어딘가 아프고 어딘가 근엄하다. 그것은 육체의 병증 때문에 근엄의 세포를 장착한다는 것이다. 신경쇠약의 흔적들이 피부 곳곳에서 주름을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나는 이 표현의 앞부분에 대해서는 쉽게 공감한다. 다만 뒷부분의 의미는 아직 잘 모른다.
묻고 싶다.
노인이란 어느 시기에 이른 사람을 말하는가?
예외는 없는가?
당신도 노인이 되는가?
당신은 언제부터 노인인가?
나는 보고 있다! 별 수 없다. '앞서거니 뒤서거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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