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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엄만 도대체 뭐 하는 거지?

by 답설재 2025. 3. 7.

 

 

 

오늘 아침엔 아파트를 산책했다.

 

개를 산책시키고 있는 준혁이 할머니를 만났다.

오늘은 "준혁이는 잘 있지요?" 해보았다. "중3이에요! 173cm고요! 아직도 이름을 기억하시네요! 깜짝 놀랐어요!" 순식간에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

"아, 그럼요! 우린 10년 전에 만난 친군데요."

 

준혁이는 그렇게 컸다는데, 준혁이네 검은 개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때도 지금도 개 담당은 준혁이 할머니다. 할머니는 그때는 좀 멋을 내고 했는데 지금은 멋을 내지 않는 것 같다. 나도 그렇다. 이건 여담(餘談)이다.

 

내려오는 길에 저 녀석을 만났다.

처음 보는 녀석이었다. 저 돌계단을 내려와서 서 있다가 다시 올라가려는 걸 보면 104동 아니면 105동쯤에 사는 것 같았다. 105동에는 "편스토랑"이라는 TV 프로그램에 새로 등장하는 그 여성 탤런트가 이사 와서 사는데, 아이가 마음 놓고 지낼 수 있도록 해주려고 1층에 산다고 했다.

지난해 가을에는 중앙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를 지켜보며 다른 아주머니들과 서 있는 그 아주머니를 여러 번 보았다.

 

아, 저 녀석 얘기를 하다가 말았다.

얘기할 것도 없다.

녀석은 엄마보다 빨리 나와서 혼자 저기까지 내려왔는데 엄마가 서둘러 준비하지 못했고, 따라 나오지 못했겠지?

'엄만 도대체 뭐 하는 거지? 난 얼른 가야 하는데!'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되돌아 서고 있다.

 

우리 사회가 저 녀석이 가지고 있을 그 기대를 저버린다면 우리는 굳이 살아갈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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